‘편자상가 회자상중(鞭者常尜 迴者常中)’-"잠든 명사를 깨워 놀아보자"의 책내용에서 발췌한 내용
이 말은 ‘늘 채찍질을 하는 사람은 팽이처럼 돌게 마련이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사람은 늘 삶의 중심(행복)을 간직하게 마련이다’라는 의미이다.
시인 김수영³⁾은 그의 시 ‘달나라의 장난’이란 작품에서 이처럼 팽이를 주제로 인간의 삶을 의미 깊게 관조하고 있다.
팽이가 돈다
...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마치 시인 김수영은 “인간의 삶이 팽이처럼 채찍으로 맞으며 돌다가 쓰러져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맞아 고통스럽더라도 돌고 돌아야한다고 삶의 진실적 내면을 날선 예리함으로 깊게 파헤쳐 사유하고 있다.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시인은 팽이가 쓰러질듯 말듯 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했을 법하다. 생존자체가 불확실한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자칫 돌아가던 팽이가 쓰러지듯 멈추면 마치 자신의 삶이 멈추고 끝나는 것이라 동일시 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 사람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간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팽이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시인 김수영이 자신의 팽이 같은 삶을 버겁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인간의 삶 자체를 명쾌히 규명할 수 없음이 안타까운 듯 그것은 달나라의 장난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장난은 곧 끌날 수 있는 놀이가 아닌가. 그러니 곧 끝날 장난 앞에 두려움은 없는 것이다. 다시 삶의 진실 속에 희망이 있음을 팽이가 돌면서 대신 답을 하고 있다. 그렇게 시인은 허무의 상처를 달나라의 장난을 통해서 치유의 근본적 해법을 되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