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詩 산책

창호지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6. 6. 5. 06:47

창호지

민용태

우리의 內部와 外部를 가르는 것은
이 얇다란 종이 하나.
북풍이 칼날을 휘둘러도
우리는 이 창호지 하나를 방패로
겨울을 난다.
구름의 포를 뜬
창호지는
그러나 작은 바람곁에도
곧잘 약하게 운다.
실은 창지는 눈물에 약하다.
작은 눈물바람에도 가슴이 허문다.
푸른 하늘에 연이 되고 싶었을까.
고명한 선비의 붓 끝에
永生을 얻고 싶었을까.
창지에는
연한 풀잎의 힘줄이 드러나 보인다.
갈기갈기 찢기울지언정
부서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상여 위에 꽃으로 필지언정
그 자리에서 깨어지진 않는다.
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깃발이 되어
펄럭이며 소리치는
실은 大氣의 사촌쯤 되는
우리네 하얀 마음.
너와 나의 등불을 지키는 것도
실은 이 얇다란 창호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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