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1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전하고 과도하면 과도할수록 위태롭다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화했다. 따라서 좋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갖고 싶은 것에 그 대표적인 것이 돈과 재물 그리고 권력과 명예다. 그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돈으로 권력도 사고 명예도 살 수 있다. 곧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돈이기 때문이다. 그 권력과 돈이 세상을 를 움직인다. 그래서 일명 현대를 일컬어 ‘황금만능시대’라 칭한다.
그런데 그렇게 넘쳐나는 돈들은 다 어디에서 누가 가지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우문일까. 그렇다. 그것은 부자들이 다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현실은 그 돈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못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 애석하게도 못 가진 사람들이 약95%에 달한다는 통계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전체 국민이 50,000,000명이고 재산적 가치가 1000조라고 한다면 47,500,000명의 재산은 50조뿐이고, 2,500,000명의 재산은 950조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것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을 만드는 자본예찬경제이론과 또는 자본맹신주의가 낳은 잘못된 경제구조의 왜곡현상이다.
그러나 이 다다익선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자기에게 ‘다다익선’의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자본의 본성과 속성은 자석과 같다. 자본의 속성 또한 다다익선이다. 돈이던 재물이던 사정없이 끌어 당겨서 오로지 자기 것에 더할 줄만 안다. 아무리 많아도 ‘이것은 너무 많다’라든가, ‘이것은 너무 적다’라든가 하는 사리 분별적 개념이 없다. 오로지 자본의 본성과 속성에 따라 충실할 뿐이다.
그런데 ‘다다익선’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자본은 클수록 강한 힘을 갖는다. 그런 자본이 없으면 문명창달이 어렵다. 다만 과도한 자본의 우월주의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즉 다다익선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재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작용에 현상이든 간에 모두 불균형을 초래함으로써 ‘근본적 중심가치’가 깨져서 불안전하고 위태로운 현상을 증폭시킨다.
불균형은 중심을 잃는 상태이다. 즉 평형 저울에 가장 안정된 상태는 저울추의 무게와 물건에 무게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물건과 저울추에 무게가 서로 다르다면 저울은 안정된 평형을 이루기가 불가능하다. 그 안정된 위치를 찾아가는 이론이 중용(中庸)의 이론이다. 중용(中庸)의 사전적 의미는 ‘어느 쪽으로든지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함’이다. 그러나 중용의 의미는 더 깊고, 더 폭넓은 의미이다.
중용 제1장의 말씀이다.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 달도야(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 達道也)’ 이는 ‘중(中)은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근본이고, 화(和)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상의 도리이다’라는 말씀이다.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근본의 이치와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상의 도리가 만나 중화(中和)를 이루면 가장 합리적인 현상이 생성된다. 그럴 때 자연현상이라 한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다. 이것에 충실한 삶이 행복의 가치를 지닌 삶이다.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근심걱정은 더욱 커진다. 혹여 누가 내 재산을 빼앗아가지나 않을까. 아니면 내 재물이 나도 모르게 어디로 새어나가지나 않을까. 등등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근심걱정도 덜고 불편함도 없으려면 끝없는 탐욕이 아니라 균형을 잃지 않는 합리적 소유이다. 노력한 만큼의 소유가 그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에 중심(中心=가운데 마음)을 지켜내는 일이다.
신용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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