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2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탐욕
나의 삶에 중심(中心=가운데 마음)을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고 그 중심을 영속적으로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자본도 중요하다. 그래서 혹자는 돈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원 없이 돈을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돈과 재물’이란? 마음대로 갖고 싶다고 해서 가져지는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돈과 재물을 멀리하고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단 돈과 재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누구에게나 따로 있고 그 크기만큼만 자신의 분수에 맞게 취할 때 그것이 정도(正道)이다.
그러나 또 혹자들은 가난한 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느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렇다. 그것은 절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단, 내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적, 정신적 피해를 주지 않았고 바르게 살아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할 뿐이지 않는가. 그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요즘 세상엔 구도의 길보다도 더욱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길을 회피하고 가려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그 당당한 사람들이 아직은 조금 더 많아 우리사회가 유지되고 세상이 돌아간다. 때문에 세상이 계속 팽이처럼 돌게 되는 것이고 앞으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에 들린 각자의 팽이채로 쉬지 말고 팽이를 쳐서 정도의 중심을 잘 잡고 돌게 해야 한다. 나만은 그 대열에서 빠져도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너도 나도 다 빠져버리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미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소중한 행복은 없다.
그래서 ‘내일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는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우린 그런 마음으로 기우뚱거리는 우리의 일상적 삶에 팽이를 힘 있게 쳐서 다시 잡아 세우고 또 쳐서 ‘행복의 중심’을 잡고 힘차게 미래를 향해 세상이 돌아가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린 돈만 많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잘 사는 것”과 돈이 많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 주변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행복은 나의 중심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리듬감이다. 이 리듬감은 곧 중심(中心=가운데 마음)이다. 법정스님께서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거나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라고 생전에 하신 말씀이다. 독일속담에 “자기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자는 없다.(No man ever thought his own too much.)”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이것이 돈과 권력의 속성이다. 마치 자석과 같다. 또 잠비아속담에 “사람들은 개와 같아서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한다.(People are like dogs they always want more.)”라고 했다. 이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가. 개가 무슨 이성적 판단을 내리겠는가. 그것은 돈과 재물, 권력에 눈이 멀어 탐욕을 부리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약관화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바로보고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중산층이 두터워져서 튼실한 허리가 되도록 하는 경제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지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신용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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