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아버지의 매
이운묵 시인-문화평론가
에너지경제ekn@ekn.kr 2017.02.07 18:21:23
▲이운묵 시인·문화평론가
유년시절 아버지한테 종아리 맞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는 얼른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변명을 하고 반항을 했다. 엄마와 큰형수가 빨리 아버지께 용서를 빌라고 했는데도 난 빌기가 싫었다. 그래서 회초리 1개가 3개가 되고, 나중에는 10개가 됐다. 결국엔 피가 질질 흐르고 종아리가 아니라 피 말뚝이 됐다. 난 그렇게 바보처럼 매를 벌었다.
요즘 국민 마음은 참담하고 아프다. 그리고 참으로 불편하다. 그 이유는 드러난 문제들에 대한 잘못 때문이 아니다. 그럼 뭐가 국민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고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용서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다. 다시 말해 국민은 빨리 용서를 하고 잊고 싶다. 그런데 변명으로 일관하고 용서를 빌지 않으니 용서를 할 수 없는 국민의 입장은 아플 수밖에 없다.
과거 한국 정치사를 보면 정치가 그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처음에는 화를 내고 질책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관대하게 용서를 해줬다. 그것이 국민의 따뜻한 마음이다. 그것이 나라에 어버이를 아끼는 존경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이처럼 국민 마음은 그 크기와 깊이가 하해와 같다. 매우 너그럽고 따뜻한 포용력은 해와 같이 동토의 북극을 녹이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역사와 국민 앞에 이 탄핵정국에 주역인 그들은 하나 같이 뉘우칠 줄도 모르고 잘못했노라고 ‘용서’도 구할 줄 모른다. 잘못을 했다고 말해야 얼른 용서를 해줄 것 아닌가? 이제 국민은 용서할 일도 없다. 왜?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니까. 엄연히 잘못을 해놓고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하니까.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화를 참다가 화병으로 죽으면 그만이다’는 식이다. 그러니 참담한 마음만 국민의 마음만 노도처럼 일렁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 있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미용과 치장을 했다고 그게 무슨 큰 문제인가. 아름다움 추구는 인간의 권리다. 아니 거의 본능에 가깝다. 미추 구분은 어린 아이들도 한다. 설령 대통령이 은밀한 사생활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의혹이 될 만한 문제인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통령도 행복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다.
그렇다면 국민이 갖는 바람은 뭔가? 양심(良心)이다. 양심은 어진 마음이다. 애당초 이 양심이 없었음을 어찌 국민은 몰랐을까? 어찌 국민은 이토록 실체를 보지 못하는 근시적 색맹이었을까? 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뒤로 빛나는 허상의 빛만 보았을까? 애당초 대통령이란 큰 그릇에 어울리지 않는 자질과 능력, 부덕을 보지 못하고 훌륭한 국가 지도자라고 믿고 선택했을까? 그러나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져 복수불반분이다.
다만 우리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의 실수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인정하는, 용기 있는 국가 지도자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장래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그런 활달한 희망을 대통령이 보여 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한 미지수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교훈을 주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다.
이런저런 이유에 의해 또는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소중한 양심을 잠시 등진 사람은 다시 양심을 되찾으면 된다. 그래서 부도덕한 권력의 병폐가 무너뜨린 국가 기풍과 품격을 바로 세우고, 썩은 정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한 지도자가 맞는다면 애매한 법리적 해석이나 정치적 계산은 내려놓고 진실과 마주하는 용기가 충분히 있다. 쓸데없이 국민으로부터 매를 버는 어리석음은 갖지 말아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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