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 저울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던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 개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저울은 물체의 무게나 질량을 측정하는 기구로 양팔 저울은 지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게를 재는 기구이다. 팔 모양의 긴 막대 끝에 접시가 아래로 매달려 있고 막대의 가운데에 받침대가 붙어 있다. 무게를 재는 원리는 수평잡기의 원리이다. 가운데 받침점을 중심으로 양쪽 팔에 접시가 매달려 있는 구조이다. 한쪽 접시에는 무게를 달 물체를 올려놓고, 다른 쪽 접시에는 추나 분동을 올려놓아 측정하고자 하는 물체와 올려놓은 분동의 질량이 같아 막대가 수평이 될 때 분동 질량의 합이 물체의 질량이 된다.
저울은 천칭, 혹은 천평칭이라고도 부른다. 함민복 시인의 이 시 ‘양팔저울’에서 암시하는 메시지는 뭘까? 그것은 한마디로 ‘균형과 조화’이다. 또 균형과 조화는 큰 것과 작은 것에 관계, 강한 것과 약한 것에 관계, 많은 것과 적은 것에 관계, 좌와 우의 관계, 상과 하의 관계, 음(-)과 양(+)의 관계, 동과 서의 관계, 남과 북의 관계, 긍정과 부정의 관계, 선과 악의 관계, 미와 추의 관계, 보수와 진보의 관계, 과거와 미래의 관계, 희망과 절망의 관계 등과 같은 양극의 주체가 상호 관계를 이해하고 중시하는 철학과 사상에 기초한 작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동양사상에서 대표랄 수 있는 ‘중용(中庸)의 말씀’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간결하지만 매우 심오한 사상과 철학이라는 대명제 위에서 인간의 관계를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복원하고 설정하려한 사유가 깊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또 이 양팔저울은 타자를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보는 과정이다. 자신의 입과 항문 그리고 몸 안 구절양장(九折羊腸)을 모두 돌아 나와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먼 곳에 있는 나를 앎이다. 또한 나로부터 타자에 이르는 길 또한 멀고 험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이 양팔저울 같다. 이처럼 관계의 실존은 양팔저울처럼 평행을 이루는 원리이다. 그리고 가장 합리성을 추구하려는 시도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수평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에 수직의 기준이나 관계의 내밀한 깊이도 헤아림이 가능하리라 본다.
신용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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