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칼럼

[이운묵의 문화칼럼] 예측 가능한 미래 비전을 만들자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7. 11. 25. 21:46

예측 가능한 미래 비전을 만들자


예측가능은 정확한 정보와 분석에서 만들어진다. 그럼 정확한 정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그것은 정견이다. 정견에 의해서 어떤 현상과 작용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균형을 유발한 문제의 중심(中心)을 바로 보고, 바로 진단해내는 통찰이 선견이 ‘예측가능’을 만들어낸다.

중심을 바로 보는 것은 어떤 사물에 작용과 현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실체를 파악하고 진단해내는 과정이다. 그런 정확한 정보와 실체가 또 다른 원인을 만들거나 잘못 된 원인에 궤도수정을 하게 된다. 따라서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좋은 원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원인이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원인은 좋은 원인에 부합한 요소와 동기가 합리적으로 작용할 때 만들어진다. 즉, 하늘에 구름이 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분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고기압과 저기압의 적절한 바람과 온도에 의한 승화작용이 발현될 때 비로소 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사회의 일들은 자연처럼 그렇게 순리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 그래야 우린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희망이 손에 잡힐 때 그 희망을 위해서 혼신에 노력과 땀을 흘리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대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삼포와 오포를 만들고, 금수저와 흙수저를 만들고, 인구론을 만들고, 문송을 만들고, 헬조선을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불확실성에 의한 예측불허의 정치문화가 조장해내는 그 원인적 결과이다.

이 나라의 희망은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인 젊음들이다. 그런데 이 젊음들이 왜 한숨짓게 하는가? 그것이 그들의 잘못 때문인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힘센 주체들에 잘못 된 원인과 선택에 의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빨리 불확실성의 과제들을 예측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여야 한다.

기업은 예측 가능한 생산활동을 통해서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하고, 정부는 예측 가능한 통계와 자료를 토대로 국가와 국가경제를 운용해야 한다. 정치는 예측 가능한 정책과 입법 활동으로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언론은 예측 가능한 국민적 정서와 정론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예측 가능한 교육과 시스템으로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 꿈과 희망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희망적인 예측 가능은 보이질 않는다. 청년실업률이 떨어지고, 공장가동률이 올라가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근로소득이 높아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이란 예측가능의 기대는 정부에도, 정치에도, 경제에도, 우리사회 어디에도 아예 없다. 이런 것들에 희망적 예측가능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하는 상실의 시대에 우리의 청춘과 젊음들은 무엇으로 잃어버린 희망을 찾을 수 있으랴?

오직 예측불허만 존재한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증폭되고, 점점 예측불허의 늪과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군상들만 들어난다. 이 예측불가능의 늪과 소용돌이에서 탈출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희망의 예측이 가능하도록 국가 비전을 만들고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미래, 예측 가능한 진로, 예측 가능한 사회, 예측 가능한 정부, 예측 가능한 우리의 삶. 이는 자연처럼 순리적이고 자연스러움의 원인과 작용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과 결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의 실체와 현상을 바로 보는 중심보기가 관건이다.

신용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