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85호 2018. 1. 12~1. 18
찬 손과 찬 술
이규보李奎報(고려高麗1168~1241)
동일여객음냉주희작冬日與客飮冷酒戱作
설만장안탄가대雪滿長安炭價擡
한병동수작향배寒甁凍手酌香醅
입장자난군지불入腸自暖君知不
청대단하상검래請待丹霞上臉來
겨울날 시린 손으로 찬 술을 마시며 장난삼아 짓다
장안에 눈이 가득하여 숯 값이 올랐기에
찬 병에 든 거르지 않은 향기로운 술을 언 손으로 따라 마신다
장에 들어가면 절로 따듯해진다는 걸 그대는 아실랑가
두고 보시게나 이제 곧 뺨에 붉은 노을이 올라올 테니
절기는 대설을 지나 엄동설한 동지를 향해 내달린다. 이렇게 추운 한파에는 문밖 어디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불편함이고 힘든 일이다. 요즘은 도시나 시골 어디를 가든 대중교통이 잘돼 있고, 집집마다 차가 다 있어서 큰 불편함을 모른다. 하지만 50년대, 60년대만 해도 사정은 많이 다르다. 보통 10리, 20리는 그냥 걸어 다녔다. 대중교통 여건은 매우 열악했고 이럴 때 자전거는 참으로 유익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런데 이 자전거도 그리 흔치 않았다.
위 이규보의 ‘찬 손과 찬 술’이란 시를 보면 절로 생전에 애주가이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아버지는 장에 가셨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김장을 하고, 담과 삭은 울타리에 밤나무 가지를 잘라 덧대 튼튼히 손을 보시고 나면 완벽하게 월동준비가 끝나신다. 시골에서 울타리 정비는 매우 중요하다. 좀 도둑이 많았기 때문이다.
힘든 가을철 농사와 한겨울 월동준비도 끝났으니 지친 심신에 어찌 술 한 잔이 생각나지 않으시랴. 그래서 쌀팔아 생필품 사고 차디찬 막걸리로 애환과 회포를 푸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과음이 문제다. 때문에 장에 간 아버지가 해가 떨어져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애타는 마음은 어머니였다. 때문에 동구 밖으로 아버지를 모시로 마중 나갔던 일이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고려高麗의 문신이다. 무인 집권기 화를 피하여 살아남은 소수의 문인 중의 한사람이다. 시, 거문고, 술 세 가지를 지독하게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유명하며, 고주몽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서사시 동명왕편을 지었다.
이규보는 당대 큰 문장가이던 이인로李仁老와는 정반대의 문학관을 갖고 있었다. 이인로의 용사론用事論이 과거의 고전에서 좋은 구절을 응용하여 시를 짓자는 의견인 반면 이규보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여 시인 자신의 목소리로 독창적인 표현을 써야한다는 신의론神義論을 주창했다. 때문에 이규보의 작품에는 기존 한시에서는 쓰지 않았던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그 표현이 탁월한 명구名句가 많았다. 이 시도 칠언절구의 정형시 중 하나로 매우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일상에서 멀리 동떨어지지 않고 삶과 매우 밀접한 주제로서 차가운 이미지이지만 그 내면에는 따뜻함이 깊게 풍겨나는 서정성이 짙은 작품으로 친밀감을 주는 명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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