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시라는 그릇/최상호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2. 5. 17:28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88호 2018. 2. 2 ~ 2. 8


시라는 그릇

시인/ 최상호


생각은 스쳐 가고
기억은 잊혀 지네

끊임없이
스쳐 가고 잊혀 지지만

시라는 그릇에 담아 두면
남아 있네

꺼내 보는 이 있어도 좋고
보는 이 없어도 좋아

담아 두는 즐거움
누리고 있으니.


말하자면 그릇은 유형이다. 그런데 여기의 ‘시(詩)라는 그릇’은 무형이다. ‘무형無形을 담아두는 무형의 그릇’은 곧 마음이다. 이 ‘마음 그릇’에 우리 인간들은 온갖 생각이며, 온갖 기억이며, 온갖 추억을 담고 한 생을 살아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할까, 어디를 갈까, 누구를 만날까, 어디서 살까 등등의 생각들은 천태만상 부지기수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담아야 하는 그릇이니 무지 커야겠다. 이 그릇이야말로 대대익선 같다. 그렇게 하면 절로 다다익선이 될 터니 말이다.

그런데 무형의 그릇에 무형을 담는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결론은 아니다. 그리고 무게도 있다. 혹자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 모두 맞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 무게를 느낄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역시 무형의 무게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서 그 무게의 저울은 작동한다. 무게가 가벼울 수도 있고, 무지 무거울 수도 있다.

그런데 시인은 무게를 느끼기도 전에 ‘마음 그릇’을 비운다. 잠시 생각을 담고, 기억을 담았다가 바람처럼 마음 그릇을 스치는 생각과 기억을 비운다. 오래 머물지 않고 잠시 스쳐 지나가도록 한다. 그러나 마음 그릇에 꼭 담아야하는 것은 그릇에 있도록 담아두었다가 때때로 자신도 즐기고, 때때로 남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마음 그릇에 담아 둔 것은 늘 그 그릇에 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사용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역할과 타인과의 소통방식이다. 하지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남에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요즘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잘못임에도 불고하고 남에게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린 남에게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이 일상에서 너무 많다. 그렇다고 다 들어줄 수도 없는 데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꼭 담아야할 것과 담지 않아도 될 것을 분별하는 일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과 담지 말아야할 것을 마음 그릇에 담는 순간 ‘마음 그릇’은 무게가 생긴다. 그 무게는 아무리 비워도 늘 무겁다. 때문에 애당초 담지 말아야 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 그릇에 담아둔다. 시인은 그런 마음과 생각으로 80평생 인술을 실천한 의로운 의료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즐거워한다. 역시 살아 있는 의식의 참다운 시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