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91호 2018. 3. 2(금) ~ 3. 8(목)
개 같이
김은자
개 같은 일이 많았습니다
개 같은,
이라고 욕하며 돌아서
침을 캑,
뱉어 주고 나면
또 개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새해에는
개 같은,
이라고 욕하지 않겠습니다
개 같이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사람 앞에 꾸밀 줄 모르고
사랑 앞에 계산할 줄 모르고
정의 앞에 타협할 줄 모르고
체온은 사람의 것보다 따스해
남의 밥그릇을 욕심내지 않고
도적 앞에서는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견공처럼
깜깜한 벽 앞에서도
희망을 물고 놓지 않겠습니다
썩은 냄새를 식별하고
낮은 소리에도 맑은 귀를 열어
개보다도 못한 인간,
이란 소리 듣지 않도록
충직하고 용감한 날들을 지키겠습니다
개(戌)는 십간십이지에서 11번째 등장하는 동물이다. 오행에서는 토(土)에 속하며, 음양에서는 양(陽)에 해당한다. 서양별자리는 천칭(天秤:저울)좌에 해당한다. 개띠생의 성향은 정직하고 지적이다. 또한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활기차고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남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균형과 조화로서 평등주의를 지니고 있다. 타인과 화합하고 타협할 줄 알고, 책임의식 또한 강한 것으로 상징된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울고 싶은가. 오죽하면 시인은 ‘개 같이’라고 개탄스런 일설을 던질까?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크고 작은 화재와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개띠의 해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대형 참사가 잇따라 발생해 국민의 마음을 이토록 연일 아프게 하는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도 되지 않은 채 정치권엔 정체성 없는 정치인들의 꼴불견 당쟁싸움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고, 전 정권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원 특수활동비 사건, MB의 ‘다스’ 소유 진실사건, MB의 대통령 기록물 유출사건, 여 검사 성추행 사건, 서민들에게 날아간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 각종 흉악한 살인 및 범죄사건 등등. 왜 세상은 시인의 말처럼 이렇게 개 같은 일들이 자꾸 벌어질까?
차라리 이런 ‘개 같은’ 일들에 귀머거리, 장님이면 어떨까? 그러면 가슴 쓸어내릴 일도, 울 일도, 슬퍼할 일도 없다. 그리고 개 같은 세상 ‘개 같이’ 살겠다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시인처럼 선량한 국민들이 “캑”, 침을 뱉지 않아도 되고, 에이 개 같은 세상이라고 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세상은 장님처럼, 귀머거리처럼 살게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분노만 솟구친다.
또 개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하다. 죄가 있다면 인간들에게 충직하고 가깝게 지낸 죄 밖에 없다. 그런데 왜 인간들은 걸핏하면 온갖 불만과 화풀이를 개들에게 돌리는지.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분노를 삭이면서 그래도 “개 같이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한다. 더 이상 까닭 없이 개를 욕 먹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이다. 그렇게 해서 “깜깜한 벽 앞에서도/희망을 물고 놓지 않겠습니다//썩은 냄새를 식별하고/낮은 소리에도 맑은 귀를 열어/개보다도 못한 인간,/이란 소리 듣지 않도록/충직하고 용감한 날들을 지키겠습니다”라고 개의 모습이 되어 ‘개 같이’ 살겠다고 세상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지금은 평창동계올림픽이 뜨겁게 한창이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시인의 다짐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벽 앞에서도 우린 절대 희망을 물고 놓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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