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92호 2018. 3. 15(목) ~ 3. 21(수)
겨울나무같이
정연복
겨울나무같이
살고 싶다.
겉보기엔
앙상한 빈 가지들뿐
아무런 볼품없고
가난한 살림살이 같아도
한줄기 햇살의 은총에
가만히 기지개 켜고
한줄기 바람의 시련에
잠시 뒤척이다가도
이내 고요의 평화
되찾고야 마는
저 이름 없는
겨울나무처럼
이 몸이야
세속에 뿌리내렸어도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마음으로
한세상
살다 가고 싶다.
정영복 시인의 ‘겨울나무같이’를 읽으면 마치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청빈한 선비를 대하는 느낌이다. 겨울나무는 혹독한 추위와 한경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강인함의 상징이다. 얼마 전 일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그런데 살 에이는 엄동설한의 강추위 속에서도 얼어 죽지 않는 나무가 신기하다는 생각에 작고 가는 나뭇가지를 하나 무심코 꺾어 보았다. 얼어서 그런지 “툭”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부러진 면은 마치 말라죽은 나뭇가지처럼 물기가 없다. 그런데 푸릇함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죽은 가지는 아니었다. 잠시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잘랐다는 생각에 나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는 나뭇가지가 이 매서운 겨울날에 고통을 참고 견디며 죽지 않고 버텨내서 봄이 되면 다시 파릇파릇 새싹을 피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병원에서 침이나 주사를 맞을 때 유난히도 고통을 참아내지 못하는 내가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살아 있음에 기쁨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고통이나 괴로움 또한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반대급부의 감정체계일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당연히 겨울나무에게도 희로애락과 고통이 따를 것이란 생각이다.
정연복 시인은 그런 겨울나무를 보면서 왜? ‘겨울나무같이 살고 싶다’고 했을까? 겨울나무는 겉보기엔 앙상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다. 마치 자신의 삶과 많이 닮아서인가? 겨울나무는 하나도 갖지 않고 다 내려놓은 무소유의 삶이다. 탐욕도, 애증도, 미련도 없다. 떡잎 하나 가리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다 벗은 나신(裸身)이다. 그렇게 다 벗고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는 그렇게 쉽지 않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시인은 그것을 안다.
때문에 시인은 삶의 고뇌와 번민 속에서 삶을 뒤척이다가 이내 올곧은 겨울나무 같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는다. 몸은 이미 세속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티끌하나 욕심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시인은 겨울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순백의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이미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요 마음만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영락없는 청빈한 선비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런 시인의 눈에 비칠 온갖 탐욕으로 얼룩진 권력과 세태의 민낯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일뿐. 그래서 이 겨울은 유난히 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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