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봄소식-천상병 시인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3. 31. 11:55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94호 2018. 3. 29(목) ~ 4. 4(수)


봄소식

천상병


입춘이 지나니 훨씬 춥구나!
겨울이 아니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 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여
그건 대지의 작난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
북극이 온지대가 될 게 아닌가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되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정도로 날씨가 풀린다. 경칩은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있다. 그래서인가 한강에 산더미처럼 떠다니던 유빙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설산 응달진 곳에 꽁꽁 얼어붙은 바위틈바구니에서도 대지의 봄기운은 투명한 물기를 샘처럼 머금고 있다. 하지만 품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은 겨울 같은 심술로 봄을 시샘하고 있다.

천상병 시인은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문단의 마지막 기인'으로 불렸다. 시인의 대표작 〈귀천〉은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이다. 그의 시는 동심에 가까운 순진성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서정성이 특징이다. 가난이나 죽음, 고독 등에 대해서도 일상적이고 소박하며 순수한 시적언어로 표현한 작품들이 다. 시인은 간경변증으로 죽음을 앞둔 시기에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지난 세월을 담담하게 돌아보고 인생을 받아들이는 달관과 관조의 태도를 가진 시인이란 평이다.

위의 시 〈봄소식〉에서 시인은 봄의 따사로운 생명의 기운을 ‘새로운 입김이여/그건 대지의 작난인가!/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고 진술하고 있다. 시인의 순진성과 동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시적 언어의 표현은 매우 간결하다. 그렇게 압축된 표현이 품고 있는 의미의 상징성은 우주 대자연을 통째로 불러 온다. 간결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크고, 높고, 넓고,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입김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더운 김이 입김이다. 대지에 무슨 입김이 있겠는가. 하지만 시인은 대지의 자연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작용의 하나인 봄의 기운과 봄바람을 입김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과 대지의 자연을 동일시하는 초월의식이다. 대지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의 생명이 곧 인간의 생명성과 동일시 된 의식이다. 따라서 자연이 곧 인간이요, 인간이 곧 자연이다. 이는 우주 대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삶이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는 탐구의 심미적 태도와 관조가 아니면 시어의 탄생으로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무궁무진한 우주대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삶조차도 ‘작난인가!’라고 힐소(詰笑)하듯 반문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의 의미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으니 그 어떤 초조함이나 조급함도 없다는 여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자연만물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꽃들 또한 봄의 계절에 맞추어 만발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그러나 우주 대자연만물의 생사를 관장하는 무소불위의 태양을 향해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라고 거침없이 내뱉는 일갈에서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당당함과 의연한 기상이 느껴진다. 절대적 존재 태양도 외롭거늘 어찌 인간이 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반어적 표현이다. 인간은 스스로 강한 존재이면서도 스스로 나약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북극 동토의 땅에서 살아남은 봄소식과 함께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