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찻잔/박후자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4. 19. 11:58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일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97호 2018. 4. 19(목) ~ 4. 25(수)


찻잔

시인/ 박후자


가득차서 아무 말 할 수 없습니다
목까지 찰랑찰랑한
그리움

이름 한번 부르면
동심원의 물결 흘러넘칠까
숨도 쉴 수 없습니다

오직 바람 속으로 증발하는
뜨거운 체온
내 안의 비워짐을 기다릴 뿐.


‘찻잔’이 주는 이미지는 참으로 정겹고 따뜻한 심벌이즘을 느끼게 한다. 정겨운 사람과 마주 앉아 있으면 누구든 수다쟁이가 된다. 말을 잘하는 사람도, 말을 잘 못하는 사람도 찻잔을 마주한 이성에게만큼은 멋진 웅변가이기도 하고, 인생의 고난을 조언해주는 카운슬러가 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담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찻잔을 앞에 두고 수다쟁이나 카운슬러, 재담꾼을 마다하고 아무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된 시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시인에게 찻잔은 찻잔이 아니다. 찻잔이 아니라 임이다. 임 앞에서 목까지 차올라 터져 나오려는 말을 갖갖으로 억누르며 침묵을 지키는 그리움이란 상대에 대한 무한의 인내와 배려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다. 그것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음에 대한 침묵이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그 사랑이 이별이 되어 떠날까 두려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필자도 그랬다.

용기 내어 이름이라도 불러볼라치면 뜨겁게 펄펄 끓는 심장은 요동치고 자칫 실수를 범하여 상대의 마음을 잃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제대로 큰 숨 한번 들이키지 못한다. 이 또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다. 때문에 티끌하나 순수의 심연에 드리워지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마음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배려와 사랑의 이해심이다. 그것은 시인의 곱고 고운 성정과 마음결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결이고 청아한 색깔이다.

하지만 그토록 지독한 그리움을 지켜내는 일 쉽지 않다. 때문에 부대끼는 뜨거운 욕망마저도 바람 속으로 증발되어 더욱 가슴 시리게 한다. 하지만 시인은 초지일관 초월적 순수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마음에 일렁이는 그 지고지순한 곱고 고운 성정마저도 변치 않고 비워내고 있음은 역설적 방하착이다. 이 또한 지독한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불변의 의지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독백이다.

박후자 시인의 작품과 시어에서 느낄 수 있는 잘 정제되고 절제된 언어와 찰진 감정이야말로 릴리시즘이 돋보이는 무색무취의 순수 향기이다. 하지만 그 깊고 깊은 그리움의 심연에 일렁이는 사랑의 결은 그 어디에도 비견되지 않는 비단결이다. 그것은 초월적 사랑에 대한 본성적 진정성의 아우라이다. 시인의 내면에는 실존적인 문제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깨달음과 성찰이 공존하는 정서적 시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내면세계의 통찰이다.

시인의 '찻잔'은 많은 그리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름 감성으로 감동과 위로를 주고 있다. 달달하지는 않지만 결 고운 행복감과 신뢰의 눈물로 교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언제 어디서라도 찻잔을 대할 때마다 떠올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