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오두막집 흰 염소/김시림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5. 1. 14:19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798호 2018. 4. 26(목) ~ 5. 2(수)



오두막집 흰 염소

시인 김시림


깍정이 서넛 달고 있는
겨울 상수리나무 사이로 내다본 하늘
바다 같은 허공

모이다 흩어지다 스러지며
흐르는 양떼구름 지켜보다가
죽은 염소를 생각한다

그날따라 엄마 아버지 늦도록 안 오시고
뒷산그림자 마당 끝 절구통까지 다 잡아먹자
덩그러니 어둑해지던 집

갯잔디 무성한 벌판 염소
곁에 두려고 억지로 끌어왔더니
외양간 말뚝에 목줄 칭칭 감고 죽었다

밤새 나를 품어주시던 아버지
어리다고 깔보느라 제 성질 못 이겨 그런 것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며 어르셨지만

갯내 어린 풀벌레 울음소리 뒷다리에 매달던
나에게 첫 애달픔을 주고 떠난
오두막집 흰 염소


이 작품의 배경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바닷가 농어촌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뜻의 핵심은 경시할 수 없는 생명성의 무게로 성찰과 관조가 돋보이는 릴리시즘 때문이다.

‘깍정이 서넛 달고 있는/겨울 상수리나무’에 이미지나 느낌부터가 매우 ‘쓸쓸하고, 고독함을 동반한다. 지난여름과 가을날 간직했던 상수리나무의 풍요는 오간데 없고 한겨울 살 에이는 혹한의 고통 앞에서 결코 생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는 깍정이의 애착은 인간의 생이 그렇듯 퍽이나 닮았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절로 슬퍼지는 비극성의 우울감은 허무와 공허의 동공을 크게 확장시킨다. 또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모이다 흩어지다 스러져가는 양떼구름’을 보면서 시인은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의 공존과 귀환을 반복한다.

과거로 돌아가 ‘외양간 말뚝에 칭칭 목줄을 감고 죽은 염소’의 애달픈 죽음과 현대인들의 일상을 동일성의 이미지로 병치한 ‘모이다 흩어지고 스러지며 흐르는 양떼구름’에서 현대인의 무미건조한 삶에 대해 깊은 사유와 뮤즈를 갖게 한다. 염소의 죽음과 공포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날은 어두워져 뒷산그림자가 마당 끝에 놓여 있는 절구통까지 통째로 집어 삼킨다. 그렇게 어둑해진 집안의 스산함은 티 없이 맑고 밝은 소녀의 감수성으로 감내하기엔 더 없이 무겁고 두려운 공포의 시간이었을 법하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이내 오신 아버지의 따뜻한 품속에 안겨 안도한 그때 그 아버지의 다정다감한 음성과 체온을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성으로 혼재된 오늘 다시금 찐한 부정의 아버지상을 그려내고 있음은 시인의 깊은 효성과 효심이 얼마나 큰지 확인시켜 준다. 그런 시인의 결 고운 심성이 오늘의 시인다운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 원인과 결과의 토양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위 시가 던지는 화두는 생명성이다. 모든 생명들이 ‘산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고, ‘죽어간다는 것은 새롭게 산다’는 의미일 게다. 로마의 시인 P.N. 오비디우스는 “많은 생명들은 죽음에서 출생한다”고 했다. 이는 살아 있을 때 죽음처럼 살고, 죽었을 때 새롭게 사는 생의 본능과 본질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체험적 독백 의식은 시인 자신의 불안전성에서 완전성으로의 변태를 위한 기도이다. 어린 염소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모든 자연의 생명성을 중시하는 시인의 인식과 의식이다.

풀벌레의 애달픈 울음소리마저도 쉽게 잊을 수 없어 뒷다리에 매달던 소녀. 그 소녀의 여린 감수성은 지금 지천명의 지혜로도 달랠 길 없는 지난날의 아픈 페이소스의 잔상이다. 시의 구조적 형식과 메타포가 있는 서술적 묘사와 간결한 언어의 절제미는 이중, 삼중의 이미지 중첩을 오버랩시킴으로써 또 하나의 여백미를 갖게 하는 서정의 미학이다. 때문에 이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