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00호 2018. 5. 17(목)~5. 23(수)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이 시는 스물아홉 청춘의 날에 뇌졸중으로 요절한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시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절로 먹먹해오고 눈물이 난다. 그의 죽음에 이 〈빈집〉 같은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허무하고 초라했을까? 시인은 곧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인가. 그래서 훗날에 울고 있을 젊음의 청춘들에게 〈빈집〉을 위로처럼 남겼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눈물의 시를 남길 수 있었는지 시인인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시는 극심한 사랑의 상실에 대한 슬픔과 아픔이다. 그 사랑으로 인해 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실연은 짙은 겨울 안개처럼 창밖을 떠돌았다.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할 말을 잊고 또 얼마나 망설이었으랴. 그러다 결국 모든 할 말을 잊고 흰 종이는 끝내 채울 수 없는 백지로 빈집의 허공에 갇혔다. 내 것인 줄로만 알았던 그 사랑이 더 이상은 자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이 이별이었고, 실연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에 불과했다.
그렇게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닌 ‘빈집’이 되었다. 빈집은 사람이 없는, 온기가 사라진, 두려움의 공포가 서린, 어둡고 캄캄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존재하는 무인, 무언의 공간이다. 이 ‘빈집’은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스산한 외풍만이 건들마처럼 맴돌다 사라지는 아린 상흔이다. 이런 빈집엔 대부분 문이 잠겨있다. 그런 문과 빈집의 마당엔 억센 쑥부쟁이와 방초만이 웃자라 파란하늘을 가리고 햇빛을 가로채서 더 이상 사랑이 싹트고 자라지 못하도록 절망의 문을 걸어 잠갔다.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고 채워졌던 소중한 것들을 포박하여 가둔다는 의미이다. 그 행위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이다. 그렇게 시인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했는가.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고 말았다.
현대사회는 두 얼굴의 집들이다. 한쪽에는 풍요가 넘쳐나는 충만의 집이고, 또 한쪽에는 채워지지 않는 빈집들이 공존하고 있다. 곳곳에 그런 빈집과 빈 학교, 빈 마을이 점점 늘고 있다. 사랑과 미래의 꿈 아이들로 채워져야 할 집과 학교 그리고 마을들이다. 그 속에 나와 우리의 사랑이 싹트고 자랄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 가정이 있었고, 배움이 있었고, 삶의 희로애락이 있었던 터전들이다. 그것은 희망의 시들음이고, 희로애락의 부재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라. 빈집에 갇힌 젊음과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가. 꽃피는 봄날에 들로, 산으로 활개를 치고 쏘다니며 희망을 노래하고 청춘을 불살라 사랑을 노래해야할 이 땅의 청춘들이 허무의 빈집에 갇혀 문을 걸어 잠그고 눈뜬장님이 되어, 벙어리가 되어 미래를 보지 못하고 살아감의 기쁨과 행복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고통이고 아픔이다. 시인은 성찰과 반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지난 젊은 날의 청춘을 냉혹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울림들림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있는 힘을 다해/이상국 (0) | 2018.06.18 |
---|---|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좋을 대로 해라/김규동 (0) | 2018.06.18 |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비스듬히/정현종 (0) | 2018.05.08 |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오두막집 흰 염소/김시림 (0) | 2018.05.01 |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찻잔/박후자 (0) | 2018.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