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문화칼럼]
신용산신문 주간 제807호 2018년 7월 12일(목)~7월 18일(수)
‘워라밸’ 신드롬 제대로 이해하기
요즘 ‘워라밸’ 신드롬이 대세이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다.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뜻이다. 거창한 성공을 꿈꾸기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런 워라밸 세대의 등장과 특징은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생부터 1994년생까지가 ‘워라밸 세대’의 주역들이다. 이 워라밸 세대가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는 나 자신(Myself), 여가(Leisure), 성장(Development)이란 3가지의 특징이 있다. 과거 직장 생활을 우선시하고 당연시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이는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문화적 트렌드 확산에 기인한 현상이다.
워라밸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일 때문에 자기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조직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한다. 많은 돈보다는 스트레스 없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취미와 대안을 모색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적게 일하고 적당히 버는 쪽을 선호한다. 남는 시간은 휴식과 여행, 취미, 자기계발 등 개인의 생활로 채운다.
워라밸 세대의 등장 요인은 저성장과 개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큰 성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라도 작은 행복감과 만족을 찾으려는 경향이다. 이런 워라밸 신드롬 현상에 대해 일각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청년들 사이에 '워라밸'과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의 인생관과 인식이 확산되는 것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개개인이 갖는 여러 가지 생각과 관점, 가치관이 다르고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서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해도 되는 걸까' 란 의구심도 든다.
그런 염려도 일견 타당성은 있다. 하지만 아무생각 없이 ‘흥청망청’이라 치부할 일은 아니다. 충분하지 않은 여건과 환경 속에서 자신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삶에 좀 더 진지하고 밀도를 높여 행복을 찾으려는 뜻이다. 현대인의 삶은 한마디로 말하면 “문명의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의 높은 파고와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중심을 잡고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균형을 잃는 순간 나의 삶이 중심을 잃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기 때문이다.
침몰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중심을 똑바로 잡고 자신의 삶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타인과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바로 이를 뒷받침할 학문과 사상은 바로 ‘中庸’이다. ‘중용’에선 균형과 조화의 가치와 행복추구의 가치 말고도 더 원대한 궁극의 가치인 천도와 인도라는 총체적 사상과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중용’을 통해서 알게 된 ‘균형과 조화’의 보편적가치만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어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다.
중용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를 망라해서 중심적 균형과 조화로써 미래사회의 문명을 창달하라는 철학과 사상이다. 중용은 이처럼 그 어디에도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자신의 삶에 궁극적 목표는 행복추구이다. 이 행복을 구현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일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일에 치여서 자신의 삶과 행복추구에 불균형이 왔다면 이 또한 불행이다. '워라밸'이 기업, 근로자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려면 보다 합리적인 '일 문화'와 ‘기업문화’의 생산성 선진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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