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

이운묵 시인/문화평론가 칼럼-갈등, 중용에 길이 있다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4. 7. 7. 10:22

갈등, 중용에 길이 있다
일간 투데이
2014년 7월 3일 목요일 사회면-피플&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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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갈등, 중용에 길이 있다
이상영 기자 | lsy1337@naver.com


승인 2014.07.02 10:28:50

▲ 정가 : 18000원
희망 잉태한 동사와 실컷 놀아보자
행복 구체적 동사서 실현되는 열매
균형감각 회복, <중용> 사용설명서

[광명=일간투데이 이상영 기자] 중정, 시중은 중용의 핵심이다. 극단적 갈등과 대립이 충돌하는 요즘 무엇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각이자 자세다. 시인 이운묵이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사서(四書) 가운데 중용 사상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풀어낸 <희망을 잉태한 동사와 놀아보자>를 펴냈다. 객관적 균형감각을 제공하는 <중용> 100% 사용설명서나 다름없다. 갈등 해법, 중용에 길이 있다는 외침과도 같아 울림이 적잖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명의 꽃이 인류 미래의 행복을 위해 만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풍요와 황금만능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은 그다지 큰 행복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린 그것을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보았고, 임 병장 총기사건에서도 보았고, 잇단 국무총리 후보 낙마에서도 보았고, 신출귀몰하게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구원파 유병언을 통해서도 보았고, 관피아를 비롯해 온갖 피아가 난무하는 참담한 현실서도 보았다.

이처럼 우리의 행복을 책임지고 보장할 대안은 국가권력에도, 종교에도 그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때문에 오늘날 이에 대한 우리사회의 병리적 현상과 부작용, 병폐들은 너무 심각하고 이제 곳곳에서 마구 곪아터지고 있다. 부와 빈의 간극은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가고 강과 약의 사이에 불평등과 불공정은 더욱 심화됐다. 좌우 대립의 갈등과 부조화 현상은 우리사회의 곳곳에 ‘양극화’라는 이질적 행태로 갈등의 골을 깊게 드리웠다.

현재 우리 정치현실을 보면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중도적 가치’를 양단(보수와 진보)이 철저히 무시해 왔다. 하지만 이 양단이 간과하는 오류가 있다. 양단은 중단(中段=中央)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양단은 자기 존재만 고집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중단도 무시해 왔다. 일체성에서 중심을 빼버린 양단은 불완전 그 자체다. 이처럼 중단 없는 양단은 미완의 불구이다. 즉 비정상이다.

또한 자본과 과학의 속성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본성이다. 그래서 경제지상주의 내밀한 이론 속엔 본능처럼 제어되지 않는 강한 힘이 있고, 그 힘(정치와 권력)의 탐욕과 물욕주의가 현대사회의 모든 이즘(ism)에 가치를 송두리째 무력화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맞서 방어하고 제어를 해서 우리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대안은 바로 중용적 인문정신의 가치와 실천만이 가능하다.

이제 미래사회의 트렌드는 ‘변화 속에 균형과 조화’이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행복의 가치를 이룰 수 없다. 중용의 중심적 가치가 그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모든 이즘(ism)에 가치와 인간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삶의 ‘참 가치들에 대한 균형 잡기’가 미래의 트렌드이다. 그것이 균형과 조화이고, 그 속에 우리 미래의 행복가치가 있다.

<희망을 잉태한 동사와 놀아보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키워드(key word)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미래사회의 균형과 조화의 가치다. 둘째는 변화의 가치다. 셋째는 새로운 행복의 가치다. 이제 미래사회의 트렌드는 어떠한 변화와 상황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가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이제부터 중용은 더 이상 학문을 위한 명사는 곤란하다. 현대인의 일상적 삶에서 동사적 개념의 생활실천 사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용’이라는 고유명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현대인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동사적 학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모든 움직임의 현상 속에서 인간의 삶과 행복이 창조되고 문명창달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이나 행복도 명사가 아닌 구체적 ‘동사’에서 만들어진다. 또한 제아무리 훌륭한 학문일지라도 인간의 삶에 행복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형식에 불과한 학문이고 무미건조한 철학일 뿐이다. 일상은 관계와 관계 속에 이뤄지는 현상과 작용의 결과다. 이를 실천하는 중심(中心=중용적 사고)은 결국 존재하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중심을 직시하자. 그때 비로소 탁류에 휩쓸리지 않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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