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민용태 서평-<희망을 잉태한 동사와 놀아보자>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4. 8. 22. 10:45

에너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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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태 서평-<희망을 잉태한 동사와 놀아보자>


영원성과 시대성 사이 파도타기 행복학
민용태 서평-<희망을 잉태한 동사와 놀아보자>


이 가치 기준의 혼란 시대에 중용(中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대에 맞는 가장 적절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행복의 과학>(인간과 문학사)에서 ‘파도타기 행복학’을 주장한 바 있다. 중용의 시중(時中)의 기준, 이운묵 시인의 말대로라면 ‘동사와 놀아보자’는 재미를 강조한 것. 영원성, 혹은 도덕성과 시대성 사이 파도타기를 하며 중심을 잡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잠든 명사를 깨워 놀아보자”도 참으로 학자다운 기발한 착상이다. 실제로 중용이 가장 강조하는 성(誠)이란 명사도 ‘말(言) 되게(成)’ 말을 하는 명사 깨우기이다. 원래 명사는 없다. 성(誠)에 따라서 명사가 깨어나기도 죽기(위선)도 한다. 따라서 “명사를 깨워 노는” 일이야 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따라야 할 가장 바람직한 태도다. 공자나 유교를 늘 양반인 척 거드름만 피우는 폼생폼사의 점잖기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통념(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던가?)이 있었다. 그런 수박 겉핥기 식 담론에 비해 이운묵 시인의 깊이 있는 현대적 통찰은 그런 통념에 대한 따끔한 경고가 될 줄 안다.


나는 이미 <세계 문예사조의 이해>(문학아카데미) 부록에 ‘誠學을 주창하며’라는 논문을 쓴 일이 있다. 현대사회와 인문과학 위기는 “우리가 쓰는 언어가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매체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이미 니체로부터 신의 말인 로고스(Logos)조차 진리성이 없음을 강조하고 안티 크리스트(Anti-Christ)를 주장한다. 근래 쟈끄 데리다의 해체 철학은 어느 말도 어느 쓰기도 진리성을 동시에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음을 말한다.


이런 진리 추구의 방편으로서 언어의 위선성, 차연성(差延,d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