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산신문

[이운묵의 벌가벌가] 가정에서 피어나는 꽃은 사랑의 향기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6. 6. 28. 17:17

금슬상화(琴瑟相和)-2
가정에서 피어나는 꽃은 사랑의 향기


21세기 현대인들은 누구나 ‘금슬상화(琴瑟相和)’를 꿈꾼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린 좀 더 냉철한 이성과 지혜로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헝클어지고 비비꼬여 있는 문제의 실마리를 합리적 이성과 지혜로 찾아내어서 한 올, 한 올 풀어내야 한다. 그것이 삶의 균형과 조화이다. 그것은 소용돌이 속에서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살아남기 위한 ‘중심잡기’이다.
내가 한 가정에 가장인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확고하게 중심을 잡고 내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확고한 중심을 잡고 있다면 어찌 그런 가정에 부부가 화합하지 않고 ‘금슬상화(琴瑟相和)’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랴. 또 금슬상화가 이루어지니 어찌 ‘가화만사성’과 ‘행복’이 꽃피지 않을 수 있으랴.
서양속담에 “화목한 결혼생활은 지상의 천국이다.(Marriage with peace is the worldʼs paradise.)” 또는 “남편이 훌륭하면 아내도 훌륭하다.(A good Jack makes a good Jill.”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금은보화가 가득해도 부부가 화목하지 않으면 천국은커녕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 분명하다. 지옥에서 어찌 웃음과 행복의 꽃을 피울 수 있으랴.
또 재산과 돈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행복하지 않아? 난 행복해. 하고 억지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이웃과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고, 돈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어찌 보면 행복은 부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 몫인지도 모른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마저도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비극이 아닐까? 그렇듯이 행복은 물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용 제15장의 말씀이다. ‘시왈, 처자호합, 여고슬금. 형제기흡, 화락차탐. 의이실가, 낙이처노!(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耽. 宜爾室家, 樂爾妻帤!)’라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처자식의 화목함이 마치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 같네. 형제들이 의기투합하고 화기애애하고 또 즐겁기만 하네. 마땅히 가족이 모여 한 가정을 이루니 늘 처자식이 즐겁네.’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가정의 행복은 가족이 화목한 가운데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창부수’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부정적 의미보다는 부부사이에 화합을 의미하는 긍정의 말이다. 자혜로운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르니 아내 또한 어찌 어질지 않으리오. 또한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다하는데 어찌 아내가 아내 된 부부에 도리를 다하지 않으리오. 그러니 어찌 부부가 화합하지 않고 닮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행복이란? 가정이란 틀 속에서 부부가 서로 화합하고 닮아가는 데서 비로소 싹트고 자라날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부가 각자의 본분과 중심을 잃지 않는데서 가능한 일이다. 또 거문고와 비파의 화음이 조화를 이루려면 상호 협력하고 맞추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 맞추려는 노력은 무엇인가?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의 작용이다. 그것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중심을 잡는 ‘균형 잡기’이다. 조화와 균형으로서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고 성의 있게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부모가 부모의 책임을 다하고 가정의 중심을 잡으면 처자식이 화목하고, 즐겁다. 이것이 내 가정에 행복과 평안을 성취하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의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키고 융성케 하는 첩경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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