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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묵의 벌가벌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면 소가 웃는다-➊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7. 3. 13. 22:13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으면 소가 웃는다-➊
우도할계(牛刀割鷄)


우도할계(牛刀割鷄)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이다. 이는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도구를 사용하거나 혹은 작은 일을 괜히 큰일처럼 장황하게 떠벌려서 요란하게 만드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예컨대 논두렁이 장마에 조금 끊어졌다. 그런데 하천공사에 쓰는 포클레인이나 불도저 같은 장비를 들이댄다. 그렇다면 제대로 일이 될 리가 만무하다. 마치 큰 공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논두렁이나 밭두렁 정도는 삽이나 가래정도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장비나 사람을 동원해서 일을 했다면 이것도 ‘우도할계’와 같은 자원과 인력을 낭비한 비생산적 일처리이다. 이것은 원칙과 격에 안 맞게 과장된 행동 따위를 비유적으로 지적하는 말이다. 서양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격언이 있다. “달걀을 깨려고 도끼를 가져오지 마라.(Send not for a hatchet to break open an egg.)” 또는 “나비를 잡으려고 총을 쏘지 마라.(Take not a musket to kill a butterfly.)”라고 했다.
중용 제4장에 말씀이다. “지자과지, 우자불급야(知者過之, 愚者不及也).” 이 말씀은 “안다는 사람들은 자만하거나 교만하여 그냥 지나쳐버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도리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일을 함에 무조건 의욕만 크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열정과 의욕도 좋지만 우선은 철저한 준비와 사리분별이 중요하다. 사리분멸과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은 결국 어리석음이다.
그렇다. 닭을 잡는데 어찌 격에 안 맞게 소 잡는 칼을 쓰는가? 그것은 분명 분별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소 잡는 칼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매우 불편하기만 할뿐 오히려 전혀 도움이 못 된다. 그것은 재원의 남용이요, 용도의 남용이요, 권한의 남용이요, 힘의 남용이다.
쓰고 쓰임에는 반드시 정적한 기준과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생산적이고,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림과 웃음거리를 피해갈 수 있다. 특히 권력의 칼이 그렇다. 그 칼이 누구의 손에 들리던 간에 그 권력의 칼을 손에 한 번 쥐기만 하면 위고, 아래고 마음껏 휘둘러보고 싶은 것이 본능적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의 속성에서 그런 마음에 유혹을 마음으로부터 떨쳐내지 못하면 그 권력은 매우 위험한 칼이 된다.
칼을 사용함에 있어서 소를 잡던 닭을 잡던 간에 우린 작은 칼조차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면서 큰칼을 욕심내고 갖기를 원하고 있다. 또한 작은 칼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칼은 늘 두려움에 대상이다. 또한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칼이라도 그 사용 목적에 따라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번 잘 못 먹으면 끔찍한 흉기가 되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우린 늘 이것(刀과 力)을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큰칼을 손에 쥐었다 해서 마구 세상을 향해 휘둘러대면 당연히 불상사가 생기게 마련이다. 최근 불거진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 게이트를 봐도 알 수 있다. 절대로 손에 칼을 쥐면 안 되는 사람이 칼을 탐하다 생겨난 불상사다. 자기 칼도 아닌 남의 칼을 손에 쥐고 마구 휘둘러 결국 많은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고 다치게 된 사건이다.
칼이 크면 클수록 그 힘과 위력은 엄청나다. 공권력의 칼과 재화가 결합하면 위험하다. 때문에 나라에 권력을 가진 공직자들은 그 큰 공권력의 칼을 반드시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잘 관리하여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것은 대통령도 예외가 아닌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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