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졸혼(卒婚)의 압력
요즘 50~60대는 배우자의 ‘졸혼’ 요구 때문에 머리 아프다. 어딜 가나 졸혼이 새로운 이슈다. 그 졸혼이 갖는 문화적 배경과 그 원인은 무엇일까? 졸혼(卒婚)은 간단히 요약하면 ‘일정 나이 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이다. 이는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卒婚のススメ)》이라는 책을 내면서 세상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결혼은 남녀가 일정한 조건에 따라 혼인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가정이라는 삶의 틀 속으로 들어가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절대성의 가족관계적 통로이자 사회규범이다. 이런 결혼문화를 통해서 가족, 가정, 사회와 같은 사회공동체가 조성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국가가 존립한다.
과거 주례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어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맹세를 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났고 60대 중반을 넘어 앞으로 20년을 더 달려야한다. 그때 차라리 “30년만”이라고 기간을 정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런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지금 내가 더 행복할까? 글쎄다.
어찌되었든 이 문제는 양면성이다. 누구에게나 부정적 혹은 긍정적 과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 그 원인과 결과가 만들어질 내용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결혼문화와 가족문화의 시대적 원인은 그 첫 번째가 의료문명의 발달로 늘어난 기대수명 때문이다. 과거 50~60년대 까지만 해도 환갑(61)이 넘으면 부모가 돌아가도 호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뭘 새롭게 ‘졸혼’을 생각할 필요가 있었으랴.
최근 평균수명의 갑작스런 증가로 과거보다 결혼 기간이 무척 길어졌다. 일정 부분 자신의 삶과 질에 투자해서 좀 더 행복을 구현하려는 노년의 정서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1.93년에서 2014년 82.40년으로 44년간 20년가량 증가했다. 이런 증가 추세는 가면 갈수록 더 큰 갭(gap)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런 갭은 또 다른 결혼문화와 사회전반에 새로운 현상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측이다.
두 번째는 가치관의 변화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가치관의 변화도 당연하다. 현시대는 다양한 문화와 다양성의 가치가 공존한다. 이것 또한 21세기를 사는 인류가 이룩하고 빛낸 문명창달의 한 축에서 생겨난 원인적 결과이다. 그 속에서 추구하는 삶의 철학과 사상, 행복추구의 가치관이 새롭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행복추구요소가 확대되면서 그 중 하나가 ‘일에 대한 욕망’이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요구되는 환경이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의 작용, 현상에서 영원성은 없다. 결혼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시작과 출발점이었다면 어느 한쪽의 사별이나 이혼은 삶의 종착과 같은 마무리이다. 이별 또한 결혼의 마무리인 종착점이다. 이렇듯 시작이 있었으니 마무리 또한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런 생의 여정에서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다면 ‘생의 궤도 수정’ 혹은 ‘생의 중간 정산’이랄 수 있는 궤도수정을 통해서 졸혼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졸혼은 책임감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생각만으로 졸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선 옳지 않다. 위기의 부부에게 졸혼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고 믿어선 안 된다. 함께 할 때의 다소 발생하는 ‘불편함’은 결별이나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라는 삶 속에 수용과 적응의 대상이기도하다. 인생에서 졸혼은 자신의 중심(中心=가운데 마음=자아)과 자존감을 찾기 위한 가치로 승화되었으면 좋겠다.
신용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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