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은유의 관계성-1
창조(創造, create)와 은유(隱喩, metaphor)는 어떤 관계인가? 동질성이 전혀 없는 남남 또는 타인과 같은 이타적 관계이다. 창조(創造)의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냄.’ 또는 ‘조물주가 우주를 처음 만듦.’과 같은 등의 의미다. 그럼 은유(隱喩)는 무엇인가? 은유는 비유법의 하나이다. 행동이나, 개념이나, 물체 등에서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뜻을 다른 말로 대체하는 언어이다. 그렇게 본다면 전혀 관계를 지울 수 없는 낱말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창조와 은유는 차원 높은 관계를 갖고 있는 사이이다. 이 창조 또한 21세기 현대문명사회에서 ‘창조경제, 창조경영, 창조예술, 창조문화, 창조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명창달을 위하고 기여할 가장 강조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용어의 관계가 2차원의 관계라고 한다면 이 창조와 은유의 관계는 3차원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은유 또는 암유(暗喩)는 직유보다 한 단계 발전된 비유법으로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주로 보조관념들만을 간단하게 제시한다. 은유는 매우 합리적이고 산문적인 비교를 벗어나 질적인 도약을 통해 두 대상을 동일시하거나 융합함으로써 그 2가지의 특성을 다 포함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특성을 지녔다. 문학에서 은유는 시창작의 기본 언어이다. 하지만 언어의 수준과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언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은유이다.
시에서 은유는 단순히 유사성을 나타내는 것에서 일련의 연상을 일으키는 것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은유는 시의 부수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시의 중심 개념과 지배적인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은 은유가 논리에 앞서는 또는 우회하는 사고체계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창조와 은유에 대해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는 “은유는 창조와 협력의 원동력”이라고 정의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탁월한 인간에 대해 ‘은유하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은유할 줄 아는 인간만이 인간 가운데서 가장 센 지성이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은유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의 문명창달을 이루긴 어렵다. 인간은 창의적인 활동력으로 각자 삶의 영토를 개척하고 확장해 간다. 그리고 세상을 윤택하게 한다. 그렇듯이 삶의 영토를 확장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사람은 당연히 보통이나 일반의 탁월함을 뛰어 넘어 지배자 또는 지도자의 반열에 선다.
이처럼 지배자 혹은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려는 사람은 은유의 능력이 뛰어나게 갖춰져 있어야 문명창달에 주인공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그런 까닭에 과거 역사에서 보았듯이 시인(詩人)이나 문인을 지배자의 위치로 모시고 존경했다. 특히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서양의 선진 국민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의식이다.
은유란 바로 협력한다는 뜻이다. 협력하는 의식과 공감대가 없이는 ‘창조경제, 창조경영, 창조예술, 창조문화, 창조기술’과 같은 인류역사의 명제가 되는 문명창달이나 번영은 없다. 우리 인류는 이 협동정신(cooperative spirit)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가 없다. 협력에 진정한 의미는 아무런 관계와 공감대 없는 단절의 상태에서 서로 관계의 작용을 통해 공감대를 만들어 확장해가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은유와 창의, 연결과 협력은 모두 한 공동체의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이다.
창의와 창조는 이질적인 사물과 관계의 사이에서 그 유사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 유사성을 근거로 상호의 성질을 개방하고 연결하면 은유성이 만들어진다. 이 은유성이 만들어지고 사고를 연결하여 사실성이 확장되고 개시되도록 꿈을 꾸는 일이 바로 상상이다. 이러한 확장의 전개를 시도하는 의식이나, 의지가 창의며 그러한 창의의 결과가 바로 창조이다.
신용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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