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리뷰] 경계境界를 지우며/임희자 시인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7. 10. 21. 22:24

경계境界를 지우며

시인 임희자


더 이상 길을 나서지 못 한다
시린 가슴 안고 서로의 목발에 기대어
가끔씩 몸을 뒤척거릴 뿐
지나간 날을 불러 세우지 못 한다
해와 달이 비켜나고 도시를 뭉개 트려도
나는 숨 쉬는 일보다
찢긴 어깨로 저녁을 맞는 일이 더 아프다
숯덩이처럼 타들어 움직임이 정지된다
아무도 읽지 못 한다
속도를 무시한 채 바퀴가 급정거한다
어둠의 발이 신호등의 뒤축을 쓸어 잡고
출구 없는 나사를 풀어낸다
무수한 경계를 지우고
몇 줌의 풍경들이 경적소리를 내며 빠져나간다
온통 지면을 흔들 듯한 빠른 속도를 따라
거품처럼 사라져가는 바퀴를 지켜보는 중앙선
간판이 얼룩의 입자로 화장을 하고
색 바랜 상표처럼 팍팍한 도심 속을 기웃거린다
거리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아우성친다
사람의 틈으로 세상이 들어오는 소리인지
세상의 틈으로 사람이 끌려가는 소리인지
지척에 몸을 뉘인 바퀴
화선지처럼 웃고 있는 신호등에 멈춘 제 모습을
초조하게 또는 불안하게 지켜본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인간이 발명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은 ‘원(圓=○)’이라고 어떤 인류학자가 말했다. 그 때부터 숫자와 바퀴문명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것은 선(線)이다. 모든 사물의 형태 또한 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둥근 원(○)도 선에 의해서 생겨났다. 기계문명의 혁명이 원(圓=○)이었다고 한다면 그 시원(始原)은 이 선(線)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선의 발견과 발명이 있었기에 비로소 현대문명사회의 바퀴문화가 진화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의 모든 소리들은 허공에다 각자의 소리 선을 긋는다. 그 소리들은 유성처럼 찰나의 선을 긋고 곧 지워진다. 때론 굵게 때론 가늘게 선을 긋고 울림의 경계를 만들고 사라진다. 이 처럼 선은 그냥 선이 아니다. 하나로 잇기도 하지만 하나를 둘로 나누어 경계를 만들기도 하고 또 지우기도 한다.
인간의 삶 속에는 이처럼 선(線)을 빼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듯이 이 「경계를 지우고」에서 ‘바퀴’와 ‘경계’는 화자가 소통하려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삶의 깊은 사유와 성찰이다. 시인은 반복되는 지루한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어제처럼 반복되고 있다.
도시의 직장인들, 시간 맞춰 일터로 나가고, 자신의 삶에 속도를 모르는 채 과속을 하고, 그러다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고, 그러나 중심을 잃은 바퀴가 급정거를 하지만 이미 삶은 제어기능을 상실한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은 철렁 내려앉고 인생에 출구 없는 나사를 풀어낸다. 그렇게 삶의 무수한 오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경계를 만들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그리고 거품처럼 사라져가는 자신의 삶에 흐릿한 의식의 바퀴를 또 다시 돌려댄다.
그렇게 아우성치는 삶의 소리는 세상의 빨간불 틈바구니에서 모서리치고 초조한 모습으로 파란불신호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마치 「경계를 지우고」는 현대인의 자화상 같다.


신용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