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04호 2018. 6. 21(목)~6. 27(수)
비 개인 여름 아침
시인/김광섭
비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돌아보면 꽃향기 물결치던 봄은 참 짧게 느껴진다. 꽃피는 3~4월에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날씨는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다가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처럼 함박눈도 펑펑 내린다. 사계절 중 여름은 제일 길게 느껴진다. 앞에서 봄을 빼앗고, 뒤로는 가을을 빼앗기 때문이다. 결실이 늦어진 초목들을 위해 초가을까지 여름처럼 따갑게 맹위를 떨치며 뜨겁다.
여름은 푸른 계절이다. 흔히 녹음방초의 계절이라 말한다. 그리고 1년 중 가장 많은 꽃들이 피는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에 피는 꽃은 대개가 흰색이다. 아카시아·밤나무·산딸나무·층층나무·조팝나무·노각나무·치자나무·함박꽃나무·나무딸기 등이 대부분 흰색이다. 흰색은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생태학적인 면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숲과 풀밭을 보면 수많은 꽃들이 여름에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김광섭의 시 〈비 개인 여름 아침〉은 지루한 한여름의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짧고 간결하다. 그래서 더욱 청량감을 준다. 때문에 한여름에 무덥고 끈끈함은 없다. 비개인 여름하늘은 말 그대로 호수처럼 맑다.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시인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연못이나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을 고개 숙여 보고 있다.
이 광경은 필자에게도 익숙하다. 청소년시절에 연못가에서 흔히 본 풍경이다. 비가 오다 맑게 갠 파란하늘은 뾰족한 꼬챙이로 찌르면 마치 풍선 터지듯 “펑~” 하고 터지면서 산산조각날 것만 같은 풍경이다. 사계절 수정같이 맑은 물로 넘쳐나는 연못은 연못이 아니라 마치 투명한 거울이다. 그런 연못에 비친 주변에 산이며, 나무며 온갖 초록의 빛깔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이었을까.
이에 김광섭 시인은 ‘녹음이 종이가 되어/금붕어가 시를 쓴다’고 감탄어린 묘사를 한다. 그것이 시인에겐 마치 금붕어들이 초록빛깔의 종이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뻐금 뻐끔거리고 말을 하고 시를 쓰는 것처럼 느꼈을 법하다. 그것은 실제 금붕어가 녹음의 종이에 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젊음의 상징인 녹음이 종이를 꺼내어 젊음을 노래하고 있는 화자 금붕어인 것이다. 너무 간결하고 압축된 상징어로 인해 시인의 정확한 마음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과연 푸르고 푸른 녹음의 종이에 무슨 시를 썼을까?
시인은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와 민족의식을 관념적으로 읊다가 차츰 구체적인 현실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가 있다. 1969년에 펴낸 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이런 시간 속에서 거둔 열매이다. 김광섭이 내놓은 시들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뒤에는 과거 우리 사회가 산업화사회로 옮겨가면서 드러낸 민낯과 비인간화에 대한 비판적 작품이다.
이는 갈수록 강퍅해지는 인간관계와 산업화사회에서 가속화되는 인간의 물화 현상에 대해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고, 삶의 진실을 가리고 위협하는 모든 위선과 허위에 저항한 작품이다. 이 시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현대사회의 문명과 도시 개발로 인해 자연 파괴와 보금자리를 상실한 채 쫓기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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