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산신문

[이운묵의 벌가벌가] 다시 주워 담으려면 깨진 물동이부터 복원해야-➌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6. 11. 22. 12:21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다시 주워 담으려면 깨진 물동이부터 복원해야-➌


가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런 가정이 가족구성원 간에 ‘균형과 조화’를 잃게 된다면 그 가정은 더 이상 가정이란 이름으로 팽이처럼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핑핑 돌아갈 수가 없다. 이렇게 가정의 중심이 잡히고 팽이처럼 쓰러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돌아가려면 가족구성원 개개인이 자기의 중심을 각자 잃지 않도록 중심과 조화와 균형을 잘 잡아가야한다. 그러면 한 가정, 한가정이 행복한 것이고, 그 한 가정 한 가정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가 다시 모여서 비로소 행복한 문명국가의 창달을 이룰 수 있다.
사람은 100% 온전할 수가 없다.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삶의 오류와 시행착오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후회한다면 용서하고 화해를 해야 한다. 살아감에 잠시 삶의 궤도를 본의 아니게 이탈했다면 바른 궤도수정을 거쳐서 본래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삶에 본이 되는 중심(中心=가운데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처세술이요, 인간관계학이다.
서양속담에 “우유를 쏟고 울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It is no use crying over spilt milk.)”라고 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만일 한 잔에 우유를 쏟았다면 그 보다 더 큰 그릇에 더 많은 우유를 채우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숨 가쁘게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가 갖는 속성이고 특징이다. 탐욕은 이에 편승한 변화된 가치관의 생리적 현상이다.
그러나 금간 물동이라고해서 아주 깨어버리기보다는 금간 곳을 정상적 상태로 원형과 기능을 복원할 수 있듯이 다시 엎어진 물은 채울 수 있도록 화해하는 노력이 우리사회에 더욱 절실하다. 엎어진 물을 다시 채울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새로 물동이를 통째로 교체해도 늦지 않다.
우리사회의 진정한 정의란?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린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데 매우 인색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정의. 그것은 진정한 정의가 아니다. 그런 허수아비 같은 정의로는 우리사회와 우리의 삶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 작은 것부터 하나, 둘씩 용서를 해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는 용서할 수 없는 것 까지도 용서가 가능하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마지막 우리에게 화해와 용서를 일깨우고 가셨다. 나 자신에게 바로 세우는 정의가 우리사회를 바로 세우는 정의라고 믿고 싶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용사물당행지리(日用事物當行之理)’로서 일상의 중용이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지혜이다. 이것이 인문정신의 중심이고, 뿌리고 사회학의 균형과 조화에 대한 이론이기도하다.
IMF 때 우리 정부는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물을 엎지른 경험을 했다. 단란했던 가정이 한 순간에 해체되고 가족을 등지고, 자살을 하고, 지하도와 거리엔 노숙자가 넘쳐났었고, 각종 생활범죄가 판치고, 사회질서가 매우 불안정하고 혼란했었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다. 이런 현상은 가정이라고 하는 우리의 삶에 중심이 흔들리고 깨어지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순간을 초래한 것은 무도한 정치와 기형적 권력이다. 이제 정치와 정부가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국가와 국민들의 물동이를 깨지게 하고 물을 엎질렀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아야 한다. 깨진 물동이는 다시 깨지지 않도록 원형을 복원하고 국민의 삶을 진심으로 보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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