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산신문

[이운묵의 벌가벌가] 깨어 있지 않으면 이상도 없다-➊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7. 5. 16. 12:08

깨어 있지 않으면 이상도 없다-➊
화서지몽(華胥之夢)


꿈, 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꿈은 우리의 이상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날마다 희망의 꿈을 꾼다. 꿈을 꾸지 못하면 우리의 잠속도 매우 허전하다. 동지섣달 길고 긴 밤 아무리 잠을 잘 잤어도 꿈 한번 꾸지 않고 깬다면 잠을 잔 것인지, 죽었다 깨어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고 왠지 허전하다.
그러나 혹자들은 꿈꾸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다. 아마 그것은 흉몽이나, 악몽을 꾸지 않을까하는 선험적 두려움 때문이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불길한 일이 닥칠 것이란 예감과 그것을 막연히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꿈 때문에 재수가 좋았느니, 나빴느니 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다 꿈 때문이라고들 믿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꿈 때문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꿈이 먼저냐 현실이 먼저냐 하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어떤 결과는 반드시 그 이전에 원인과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과 행위의 시작을 적절한 때에 잘 맺으면 어떤 일이든지 그 결과는 좋을 것이다. 단, 그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인과 행위에 대하여 미처 우리가 쉽게 알지 못했음 때문이다.
중용 제2장에 보면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이라 했다. 군자가 중용의 도리를 잘 실천할 수 있는 까닭은 적시(適時)와 적합(適合)한 행위의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행운과 복을 지을 수 있는 계기와 시의적절한 때가 있다.
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 공손헌원(黃帝 : 公孫軒轅)은 어느 날 낮잠을 잤다. 그런데 꿈속에서 화서(華胥)라는 나라로 놀러 갔는데 그 곳에서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의 세계를 보았다. 그 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자의 권위도, 모두 없었다.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유불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도 없이 모든 것을 초월한 자연 그대로였다고 한다.
물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았고, 물위나 허공을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전혀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았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가 자유였고 모든 것이 충만한 이상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황제는 꿈속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그런데 황제는 번뜩 깨닫는바가 있어 즉시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했다. “짐(朕)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아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었소. 그런데 짐은 이번 꿈속에서 비로소 그 도(道)라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라고 말했다.
그 후 황제(黃帝)가 ‘도(道)’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그야말로 태평성대였으며 그 때부터 “화서지몽”이란 고사성어가 후세에 전해 내려왔다. 나이지리아 속담에 “잠을 자지 않으면 꿈도 없다.(No sleep, no dream.)”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이상(理想)도 없다’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한번 보라! 꿈꾸는 세상 같지 않는가? 자고나면 어이없는 일들이 수없이 거품처럼 일어났다가 또 자고나면 또 다른 황당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먼저 것은 또 우리의 기억에서 꿈처럼 사라져간다. 미래에 대한 이상을 활짝 품고 꿈을 꾸되 현실엔 깨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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