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8월의 시/오세영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8. 27. 11:47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12호 2018년 8월 16일(목) ~ 8월 22일(수)


8월의 시

시인/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8월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은 당연지사 8.15일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1910년 8월 28일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빼앗겼다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치하로부터 벗어나 독립한 날이다. 그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법으로 제정된 4대 국경일에 하나이다. 때문에 8월이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하지만 8월에 의미처럼 그런 의미를 제쳐두고 위의 시 〈8월의 시〉가 갖는 의미에 대해 오세영 시인이 바라보는 관조와 시선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우선 8월은 여름의 마무리와 가을의 시작이 함께 공존하는 달이다. 계절로 보면 봄은 초년이요, 여름은 중년이요, 가을은 말년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중년의 여름은 인생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절정기는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숨 가쁘게 오르고 또 오르는 길을 멈출 수가 없는 인생의 최고를 치닫는 절정기이다.

그 절정기에 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인생 고갯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후회 없이 꽃을 피우고 인생의 멋지고 아름다운 빛과 향기를 품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꿈과 희망으로 한 송이 욕망의 꽃을 피우기를 갈망지만 온통 초록의 물결로 법석이는 세상에 꽃 한 송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부재의 존재감이다. 이는 곧 있음 속에 없음에 대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나 공허의 재인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또한 지칠 줄 모르고 정상을 위해 달리는 위풍당당한 8월의 녹음은 자연의 온전한 원숙과 위대함 그 자체이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녹음의 정열도 정상을 눈앞에 두고 목까지 차오르는 숨 막힘과 폭염 같은 열정의 한계가 위기의식에 봉착하면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녹음도 지쳐 곧 단풍으로 황혼을 맞을 것이란 자괴와 페이소스(pathos)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시인은 ‘오르는 길을 잠시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할 것을 조용한 어조로 녹음에게 당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대한 작은 경종이자 삶에 대한 위로이다. 곧 머지않아 단풍들 삶인데 그 조차 잊고 있는 녹음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뮤즈(Muse)와 독백이다. 8월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들에 대한 오류와 성찰을 위한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르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볼 시간이다. 8월은 바로 그런 의미의 달이다.

오세영(1942년 5월 2일~ )시인은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가, 1968년 『잠깨는 추상』이 추천되면서 등단되었다. 시집으로는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고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