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믿음은 별이라서/오규원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9. 11. 22:53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14호 2018년 9월 6일(목) ~ 9월 12일(수)

믿음은 별이라서

시인/ 오규원(1941~2007)


우리의믿음은작아서
각자달라서
우리의믿음은우리가어두워서

우리의믿음은우리가작아서
너무인간적이라서
우리의믿음은해탈과는너무멀어서
몸은작고여기에서멀리있다
그러나
그러나

믿음이없으면무엇이
이어둠을반짝이겠는가
믿음은별이라서

작아도모두반짝인다

믿음은 별이라서
믿음은 별이라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믿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뭘까? ‘믿음’은 타인에 대해 갖는 믿고자 하는 마음이다. 또는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갖는 확신 같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믿음을 잡아 흔들고 따라붙는 불확실성적 개연성이 문제이다. 우선 정치인의 말과 행동 공약이 그렇고, 고용주와 근로자의 불신관계, 정부와 기업 간의 불신관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불신관계, 사제 간의 불신관계, 우정의 불신관계, 가족 간의 불신관계, 이웃 간의 불신관계, 가짜뉴스, 영악스런 각종 금용사기 등등이 모두 ‘믿음’의 부재에서 생겨난 돌연변이적 불신의 산물들이다. 이런 불신의 무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우리 사회의 ‘믿음’과 희망을 좀먹고 힘들게 공격하는 암적 존재이다.

이렇게 불신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믿음’이란 낱말은 참으로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러움의 대명사처럼 공허하기가 그지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어떻게 해야 이런 불신의 인간관계와 공포의 사회 속에서 속지 않고 ‘믿음’을 갖고 살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믿음’이 사라지고 ‘불신’이 소용돌이치는 현실 속에서 과연 믿음은 우리의 가슴에 피는 희망의 ‘별’이 될 수 있을까? 두렵고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별이 곧 ‘믿음’이다.

위의 시 〈믿음은 별이라서〉는 불신으로부터 유린되고 있는 ‘믿음’에 대한 희망을 수호하고 갈망하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오규원(1941~2007) 시인은 관념의 파괴, 형식의 해체를 주장하는 대표주자이다. 또한 현대시는 새로움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시인의 정신이고 시세계이다. 특히 띄어쓰기를 과감히 거부했다. 그와 같은 실험정신이 위의 시에서도 잘 적용되어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차원이다. 시의 형식이 사뭇 새롭다. 하지만 내용은 매우 보편적이다. 그 보편함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추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위의 시는 별을 바라보면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믿음’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마음이다. ‘믿음이없으면무엇이/이어둠을반짝이겠는가/믿음은별이라서’라고 그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 믿음이 없고 사라진 어둠속에서 보이는 것은 불신뿐이다. 이러한 ‘믿음’에 대해 종교 철학자인 A.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해하지 못하고는 믿기 어렵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이해할 때에 불신은 사라지고 ‘믿음’이 싹튼다. 그런 믿음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이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드디어 70여년의 오랜 불신과 냉전의 시대를 해체시키고 새 역사의 창조를 위한 ‘믿음’의 북미관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파종을 했다. 앞으로 이 믿음의 싹이 무러무럭 자라 한반도의 평화가 아름답게 꽃피워지길 ‘별’의 마음으로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