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들림시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쉼표/임규열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8. 10. 6. 15:26

[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17호 2018년 10월 4일(목) ~ 10월 10일(수)

쉼표

시인/임규열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

당신의 삶을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글의 어디쯤엔가 숨어 있을
작고 눈이 까만 쉼표 하나

격정과 평온이 뒤섞인 채
힘겹게 싸워온 한 생애
이젠 부드러운 중용의 물결 따라
고요히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
그 저녁 강의 어디쯤에서 꿈틀
당신의 지친 몸 돌아눕게 하는
동그란 몸집의 쉼표 하나

붉은 황혼을 바라보며
은빛 숨결을 고르는
당신의 그윽한 품 속에서 나는
이승과 저승 사이
그 틈새의 발끝을 말없이 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콤마

잠깐,
生은 하나의 쉼표가 아닐는지요


현대를 가리켜 ‘초스피드시대’라고 한다. 그 스피드는 생산성의 효율적 시간과 거리의 단축을 의미한다. 스피드시대 기계문명의 발달로 전국이 1일 생활권으로 압축된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스피드 시대가 이제는 끝없는 속도경쟁의 초음속 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에 진입했고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모든 생활환경의 중심이 ‘스피드’ 모드로 바뀌었다.

과거 우리에겐 ‘빨리빨리’라는 수식어가 몸과 마음에 배어 있다. 때문에 모든 것들을 빨리빨리 이루려는 속성과 관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린 급변하는 시대의 앞만 보고 주시하면서 1분 1초라도 한눈팔 겨를 없이 달렸다. 속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유익하고 좋다는 인식이다.

일상생활에서 그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가 바로 휴대폰이나 태블릿 PC, 노트북, 사물인터넷과 같은 정보와 통신산업의 편의적 기술이다. 또 대중이 이용하는 이동수단엔 자동차, KTX, 비행기, 배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IT산업의 발달로 ‘빨리빨리’가 가능해진 수단이다. 이런 것은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매우 생산적인 효과로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도를 따라잡는 기술이나 산업이 경쟁사회에서 새롭게 유망산업으로 떠오르고 경쟁의 구도 재편 속에서 언제나 승리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늘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이고 잃는 것도 많다. 이런 스피드 시대의 현대인들은 고민은 깊다. 스피드의 패러다임과 문화에 제대로 편승해서 따라가지 않으면 더욱 뒤처지거나 낙오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두에 설 실력과 자신은 더더욱 없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일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하지만 최후의 승리는 언제나 1, 2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1, 2등을 위해 모두가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 중에는 속도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속도가 필요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현대인의 삶은 다원화된 환경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며 함께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적 당위성에 놓여 있다. 즉 내가 잘났다고 나 혼자 무제한의 속도로 세상을 달려갈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재능과 실력이 있다면 속도가 느린 사람들을 이끌고 견인할 책임은 있다. 하지만 그런 책임을 외면한 채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혼자 과속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 속도를 무시하면 인생을 빨리 끝낼 수도 있다.

위의 시 〈쉼표〉는 쉬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는 그런 현대인들에게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라는 애정 어린 메시지이다.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울림의 경종은 매우 크다. 또 ‘격정과 평온이 뒤섞인 채/힘겹게 싸워온 한 생애/이젠 부드러운 중용의 물결 따라/고요히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되라고 임규열 시인은 나직한 음성으로 당부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용의 물결’은 물과 같은 자연의 이치와 지혜이다. 즉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만큼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시인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웃을 위해 ‘쉼표’를 통해 속도 조절할 것을 진정한 눈빛으로 권고하고 있다. 다소 아포리즘(aphorism)적 성찰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많은 뮤즈(Muse)를 동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