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18호 2018년 10월 11일(목) ~ 10월 17일(수)
가을을 타는 남자
시인/ 金 滿 年
이 계절 앞에 서면 어쩔 수 없다
혼자
뜨거워져
속수무책 도지는 병
노을酒 한 잔에 풀 섶을 비틀거리며
어쩌자고
덜 여문 바람에게
마음을 허락하는가
지금 와서 다시 사랑을 만드는가
가을은 아쉬움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이 계절 앞에 서면 어쩔 수 없다”처럼 인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속절없이 가버린 지난 봄, 여름을 회상하며 어떤 사람은 환희의 미소를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회한의 눈물을 짓기도 한다. 이처럼 가을은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환희와 회환을 동반하는 어쩔 수 없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하여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혼자/뜨거워져/속수무책 도지는 병”이지만 그 병 앞에서 그냥 무릎 꿇고 속수무책으로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지난 시간의 아쉬움이 있었으면 그 아쉬움의 자리에 다른 것으로 채우면 된다. 채울 수 없다면 그냥 비워두고 거울처럼 바라보는 것도 괜찮고, 그 비움의 공간에서 비상의 날개를 펴고 파란 꿈과 함께 파란하늘, 푸른바다를 자유롭게 유영을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가을에 이효석에 《인물 있는 풍경》은 이 가을에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마음에 다소 격려와 위안을 주고 극복하기에 좋은 글이다. “가을은 차고 이지적이면서도 그 속에는 분화산(噴火山) 같은 정열을 감추고 있어서 그 열정이 이지(理智)를 이기고 기어이 폭발하는 수도 있고, 이지 속에 여전히 싸늘하게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열정과 이지가 무섭게 대립하여 폭발의 일선을 위태롭게 비치고 있는 것이 가을의 감정이요 성격이다.”
그렇다. 위태롭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때론 잘 여문 시간일수도, 잘 여물지 못한 시간일수도 있다. 우리에게 가을은 바로 이런 시간이다. 다시 말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폭발할 수도, 폭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내면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이지가 사려 깊게 중심을 잘 잡아주고 가을을 무사히 넘겨 안온한 숙면의 겨울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자연의 순환이치와 신의 섭리인 듯하다.
독일이 낳은 위대한 문호 헤르만 헤세의 《가을날》의 시를 보자.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 가을이거니/오랫동안 마음에 살고 있던/행복한 생각도 서러움도/이제 먼 곳 향기에 녹아 사라졌다.?잔디 풀 태우는 연기들에 나부끼고/그 부근에서 노는 마을 애들/지금은 나도 끼어 노래 부른다/노래하는 애들을 따라 소리를 맞춰.” 헤세도 “이 계절 앞에 서면 어쩔 수 없다”처럼 어쩔 수 없이 “행복한 생각도 서러움도” 먼 곳 향기에 녹여 모두 날려버렸다.
위의 시《가을타는 남자》에 김만년 시는 지난 아쉬움의 시간들 속에서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페이소스(pathos)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리리시즘(lyricism)과 뮤즈(Muse)를 동반하는 연시이다. 하지만 시인은 “어쩌자고/덜 여문 바람에게/ 마음을 허락하는가”라고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중심을 잡고 추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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