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21호 2018년 11월 1일(목) ~ 11월 7일(수)
콩나물
시인/ 정은기
투명한 심지 끝에
물 길어 나르며
빛없는 어둠 속 절름 절름
노란 등불을 켜기까지
어찌 값싼 이름으로만 부르겠는가.
탁한 세상 소주잔 앞에 놓고
길을 묻는 사람들 그 곁에
맑은 술국으로 앉아
더운 노래로 가슴 데워주고
밑 빠진 시루
물 붓기를 한다 해도
한 뿌리 곧게 내려
높은 음 자리 희망가를 연주하는
콩나물, 참 순하고 맑은 이름 아닌가
콩나물은 우리에게 매우 흔하고 친숙한 음식이다. 하지만 아주 유익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이다. 무를 얕게 썰어 넣고 함께 끓인 콩나물국은 그 시원함과 아삭한 식감은 입맛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이 콩나물은 중국이 원산지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이용한 기록이 있다. 요즘 도시에서야 콩나물은 대부분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먹지만 예전 농촌에서는 직접 키워 먹었다. 이런 콩나물에는 숙취에 도움을 주는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어 해장국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위의 시 「콩나물」 이 주는 이미지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친숙한 서민적 어조와 서정성이 돋보이는 리리시즘의 리얼리티가 특징이다. 또한 투명한 메타포의 진술은 콩나물과 친숙한 가정주부나 아낙들에 입장에서 보면 묘한 아픔과 페이소스를 갖게도 한다. 때문에 지난 시간들의 일상이 오버랩 되고 있다. 이러한 느낌은 곧 서민의 애환과 절망이지만 시인은 담담히 가슴 깊은 내면 어둠의 도저에서부터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투명한 심지 끝에/물 길어 나르며/빛없는 어둠 속 절름 절름/노란 등불을 켜기까지/어찌 값싼 이름으로만 부르겠는가.’ 이것은 시인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다. 그 마음이 노란 희망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빛없는 어둠 속에서 가늘고 투명한 심지 끝을 이용해 세상에 필요한 물을 남모르게 길어 나르고 있다. 그러한 수고와 가치를 어찌 값싸게 부르겠는가라는 반문이자 자위(self-consolation)이다. 콩나물은 우리의 머릿속에 몇 백 원에 지나지 않는 아주 값싼 식재료의 대명사로 인식된 지 오래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아주 뛰어나고 꼭 필요한 인재임에도 그 기득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일갈과 항의 같기도 하다.
정은기 시인은 그렇게 열정적인 애주가는 아니다. 앞에 있으면 두서너 잔쯤 하는 주량정도이다. 그럼에도 어찌 이렇게 리얼한 애주가의 감성으로 고단한 세상살이의 애환을 위로하고 달래고 있는가? 그것은 시인의 맑고 깨끗한 깊은 그리고 따뜻한 감성에서 발현된 사유와 성찰이다. ‘밑 빠진 시루/물 붓기를 한다 해도/한 뿌리 곧게 내려/높은 음 자리 희망가를 연주하는/콩나물, 참 순하고 맑은 이름 아닌가’라는 시의 결론은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콩나물시루야말로 밑 빠진 독이다. 시인은 물로 시루를 가득 채우려는 목적이 아니다. 자각 있는 삶과 바른 삶에 대한 관조와 탐구 그리고 사유이다. 괴테는 ‘삶의 기쁨은 크지만 자각 있는 삶의 기쁨은 더욱 크다.’라고 했고, 소크라테스는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라고 했다. 그렇듯이 시인도 자각 있는 삶과 바른 삶에 대한 직관과 통찰이 아닐까.
이러한 시인의 시적 상상력과 통찰 그리고 담론은 지극히 선한 심성과 내면의 성숙함에서 엄격히 통제된 합리성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다. 어둠이나 우울함에서 밝음과 기쁨으로의 전환을 일깨우고자 하는 희망이다. 비뚤어진 현실에 크게 분노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한 수용과 포용으로 평상을 유지하는 시격은 더 없는 정조와 품격으로 매혹적인 감동이다. 이것은 시인의 내면의식의 심층에서 공명된 희로애락의 비의(秘意)가 응축되어진 결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더욱 콩나물국이 당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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