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22호 2018년 11월 8일(목) ~ 11월 14일(수)
현자賢者의 마을
- 숲의 전설·1
시인/권천학
햇볕 한 바작 수북하게 짊어지고
그림자 앞세우고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사람의 마을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오래된 현자賢者의 마을이 있다고 한다
가까이 가면 푸르스름한 향내가 번지고
보랏빛 안개가 피어오르는데
자세히 보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겨루며
빽빽한 숲을 이루고
언듯언듯 할배의 흰 수염이 석양의 구름에 스칠 뿐,
귀 밝고 마음 맑은 이들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침묵의 소리 가득한 웅웅거림에
바람결에 찍혀 나오는 음표들이 스삭거릴 뿐,
문자(文字) 없는 그 마을
위의 시 〈현자의 마을-숲의 전설·1〉은 판타스틱하고 몽환적 리리시즘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현실이면서 비현실이고, 비현실이면서 현실이다. 이 두 공간 속에서 시인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자연을 말하는 듯하기도, 인간을 말하는 듯하기도, 문명을 말하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현자의 마음처럼 맑고 깨끗한 청정심과 침묵의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는 밝고 선명한 귀를 가졌다면 이처럼 시인의 말이 어렵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과 접신해서 내통하고 쏟아내는 무녀의 방언 같은 말들도 현자는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그렇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고,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영역에서 우린 보이는 것만 보고,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성능불량의 시안과 맹한 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이 하는 말을 쉽게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자연은 진리이고 만물을 키워내고 관장하는 신의 영역이다. 그래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 앞에서 인간은 자연을 위대하다고 한다. 자연이란 낱말에 대해 도덕경에서는 ‘인간 사회에 대해 대응하여 원래부터 그대로 있었던 것, 또는 우주의 순리를 뜻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도덕경에 나오는 자연은 현대어의 자연과 달리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본래의 뜻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해 J. W 괴테는 '자연은 견고하다. 그 보조(步調)는 정확하고 예외는 극히 드물고 법칙은 불변이다.’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목적 없이는 아무 일도 안 한다.’라고 했다. 이처럼 자연은 모든 일의 목적에 맞게 스스로 행함을 갖는다. 그러한 행함의 소리들이 우리 인간에게는 오직 바람소리 같이 “웅웅 거림”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알 수 없는 법칙대로의 행함을 위한 현상이다. 그러나 현자의 마을에 사는 현자는 이러한 자연의 현상과 생태에 대해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하나의 공간에서 또 다른 영역과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현자의 마을엔 인간이 들어갈 수 없고, 그 ‘현자의 마을’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대명사 ‘문자’를 두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전설처럼 들리지만 문명으로부터 생태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자연에 대해 권천학 시인은 그 에코토피아적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자본의 횡포와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반성하며 자연의 생태적 중요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환기시키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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