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25호 2018년 12월 06일(목) ~ 12월 12(수)
겨울
시인/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자연에게 있어서 겨울은 침묵의 계절이다. 봄은 소곤소곤, 여름은 왁자지껄, 가을은 재잘재잘 지난 성숙의 계절을 추억하며 겨울을 맞는다. 그 겨울은 하고 싶은 말이며, 행동을 최대한 자재하며 성찰과 더불어 침묵과 고요의 시간 동안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깊고 깊은 사색으로 다시금 생의 긴 여정을 자연스럽게 준비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말과 행동은 자신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수단이자 방법이다. 이 말은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함께 소통하는 교류체계이다. 이런 교류체계를 언어적 정보교환(communication)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지만 크게 보아 5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둘째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셋째는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하는 사람. 넷째는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사람. 다섯째는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말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항상 투덜거린다. 어떤 일을 해도 항상 불평불만을 서슴없이 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인데도 주저 없이 말을 한다. 이에 비해 항상 자기 자신의 주어진 일에 대하여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듯 자연은 침묵의 시간이 다가오면 하고 싶은 말을 접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때를 기다린다. 그런데 자연의 생명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그런 자연의 법칙에 반기를 들고 반칙을 한다.
시인은 그런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반칙적 사고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순응하며 함께 조화를 이루기를 갈망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인은 짙은 초록빛으로 왁자지껄 했던 열정의 여름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자연의 모든 생명들과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 아쉬움을 재잘재잘 노래하는 가을의 절정에서 자연은 욕망을 접고, 마음을 비우고, 놓을 것은 놓고, 의연한 자세로 묵묵히 침묵의 시간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운다.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로 아래로 낮은 곳을 따라 임하는 겸허의 수혼(水魂)과 같은 구도적 순응이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노래만 남아 쌓인다.”처럼 어쩜 겨울은 모두 떠나고 없는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한 적막의 계절이다. 하지만 그런 적막의 시간에 그렇게 무의미할 것 같은 “침묵에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을 누군가를 위해 바람처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의 위대한 정신이요 아름다움이다. 시인은 그렇게 겨울의 한 복판에서 봄을 준비하며 희망을 노래한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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