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울림들림 시 읽기 리뷰]
신용산신문 주간 제823호 2018년 11월 15일(목) ~ 11월 21(수)
상처
시인/ 정은기
상처가 아물려면 가려울 테니
긁지 말나시든
어머니 말씀처럼
아픈 기억들
안으로 삭이며
굳은 딱정이로 문 걸어 잠그고
가려워도 덧나지 않게
손톱 둥글리며
긁지 않았지
싸리꽃처럼 붉은 새살
곱게 도드라질 때
상처도 꽃으로 핀다는 걸 알았지
현대사회처럼 상처가 많은 사회가 또 있을까? 뉴스를 보면 긁히고, 찢기고, 할퀴고, 터지고, 부러지고, 끊어지고 등등. 그래서 세상은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그런 세상의 상처와 아픔 때문에 사람들의 눈엔 눈물마를 날이 없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린이집에서, 놀이터에서, 부부지간에, 형제지간에, 친척 간에, 친구지간에, 고용자와 고용주간에, 상급자와 하급자간에, 연인지간에, 거래사간에 등등이 그렇다.
상처의 모양도 가지가지, 상처의 이유도 가지가지, 상처의 크기도 제각각, 상처의 치유도 제각각이다. 시간이 흘러 아무는 상처도 있고,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도 있다. 특히 큰 신뢰와 큰 믿음에 더욱 그렇다.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물질적 상처도 많이 받는다. 물질적 상처가 마음의 상처로 발전하기도 한다. 상처는 이처럼 현대인의 일상처럼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상처란 상대적이고 대립적이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고, 받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준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상처를 줄만한 사람이 있으면 아예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동물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출생과 더불어 개인을 둘러싼 인간관계 즉 가족 관계 속에 있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태어나 집단 속에서 성장하고, 집단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끊임없이 타인, 즉 사회와의 관계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지난날 경험했듯이 상처가 아물 때의 가려움은 정말 참기 어렵다. 문제는 상처를 건드리면 더욱 상처가 덧나서 커진다. 그렇다고 그 가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 상처가 덧나더라도 피가 나올 정도로 긁어야 우린 시원하다. 그렇게 해서 덧난 상처는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겨우 조금씩 조금씩 아물어간다. 그만큼 우린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위의 시 「상처」의 배경은 시인의 어머니께서 일러주신 귀한 가르침이 이 시의 탄생배경이다. 시인은 어머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세상의 상처들과 꿋꿋하게 싸우며, 버티며 오늘까지 왔다. 그와 같은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세상의 상처에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 법하다. ‘상처가 아물려면 가려울 테니/긁지 말나’시든 어머니의 말씀은 명언이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말이다.
‘아픈 기억들/안으로 삭이며/굳은 딱정이로 문 걸어 잠그고//가려워도 덧나지 않게/손톱 둥글리며/긁지 않았지//싸리꽃처럼 붉은 새살/곱게 도드라질 때/상처도 꽃으로 핀다는 걸 알았지’에서 이 시에 묘사되는 ‘상처’는 아포리즘적 심볼리즘의 메타포가 강하다. 하지만 몸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애거니(agony)가 스스로 비틀어 대는 어려움을 동반한다. 이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모진 고문을 참고 견딘 시인의 마음엔 끝내 ‘싸리꽃처럼 붉은 새살’이 돋고 도드라진 새살엔 한 송이 꽃이 핀다. 시인은 상처를 상처라 하지 않고 ‘꽃’이라 한다.
우리 주위를 들러보면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고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내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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