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칼럼

[아침햇살] 악마주의, 인문정신으로 잡자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6. 3. 3. 23:57



[아침햇살] 악마주의, 인문정신으로 잡자

이운묵 시인 문화평론가

에너지경제ekn@ekn.kr 2016.02.16 16:49:36


▲이운묵 시인-문화평론가

[아침햇살] 악마주의, 인문정신으로 잡자

요즘 뉴스에서 "살인사건~ 뭐 어쩌고" 하면 몸서리쳐지고,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 난 그런 생각에 밥을 먹다가도 재빨리 채널을 바꾸거나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리고 식구들도 못 보게 한다. 각종 기이한 패륜 범죄와 잔혹 살인극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는 악마적 현실을 보면서 느끼는 기분이다.

요즘 방송되는 인기드라마 ‘리멤버’, ‘내 딸 사월이’, ‘내일도 승리’, ‘화려한 유혹’ 등에서 등장하는 범죄의 유형도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잔혹한 장면들에서는 고개를 돌린다. 또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반전 때마다 악역들에 야비한 술책과 비윤리적, 부도덕성에서는 더욱 큰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악마의 천국이 따로 없다. 이렇게 ‘흉악무도한 사건사고들. 그리고 드라마까지 합세해서 세상이 악마적으로 변해 가는 구나’라는 생각에서는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이 사회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무섭게 변해가는 세상에 미래사회의 주역이 될 이 나라 청소년들에 장래와 안위가 걱정이다.

악마는 재앙을 내리거나 나쁜 길로 유혹하는 마귀다. 19세기 말 서유럽에서 나타난 악마주의(惡魔主義 Satanism)를 연상케 한다. 악마주의는 문학 또는 사상의 한 경향이다. 매우 추악하고 퇴폐적이며, 기괴한 전율 또는 공포 따위에서 그 의식의 미와 정당성을 추구하는 작품에 성향이다. 보들레르와 와일드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고 비평가인 보들레르(1821~1867)는 기이한 상상력과 예민한 탐미적(耽美的) 감각을 바탕으로 악마주의(惡魔主義) 경향의 시집 ‘악(惡)의 꽃’을 출판했다. 제목부터가 침울하고 악마적이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아일랜드의 시인이면서 극작가인 19세기 말 유미파를 대표했고, 작품으로는 희극 ‘살로메’,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따위가 있다. 이것 역시 살인을 전제로 한 악마적 스토리이다.

이처럼 작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 ‘악마주의’ 현상. 무엇 때문에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혼재된 결과지만 충동, 분노 조절이 불가능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분노의 도가니 시한폭탄, 평화가 사라진 중동, 극단주의자들에 테러, 빈발하는 강도 납치 강간사건, 불특정 다수의 집단테러 등 모두가 그런 악마주의적 현상이다.

인간에 대해 맹자(孟子)의 성선설과 순자(荀子)가 주장한 성악설이 다르지만 결국은 선한 인문정신을 추구하는 이론과 사상이다. 그런 심리적 양면성을 통제하고 다스릴 대안은 강한 도덕적 수양과 인문정신만이 대비책이다. 중용 제10장의 말씀이다. ‘君子和而不流(군자화이불류), 强哉矯(강재교), 中立而不倚(중립이불의), 强哉矯(강재교)’라. ‘군자는 속된 것에 휩쓸리지 않으니 이것이 강함을 바로 잡아 세우는 것이요, 중용의 도리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즉 사람다움의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나약한 인간은 언제고 악마의 유혹에 휘말기 쉽다. 중용의 도리는 인간이 지켜야 할 천도와 인도이다. 천도는 하늘의 도리요, 인도는 사람의 도리이다. 이 도리가 모두 중용의 핵심적 인문정신의 사상이다. 따라서 군자는 그 어떤 악마성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한 인문정신이 자신을 굳건히 지키고 사악한 악마들을 퇴치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제 타인의 악마성만 꾸짖는 습성을 버리고 내안에 악마성은 없는지, 우리 함께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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