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칼럼

[칼럼] 한국사회의 사탄이즘, 강한 인문정신만이 방책

오얏나무 위 잔잔한 구름 2016. 4. 22. 12:34

[칼럼] 한국사회의 사탄이즘, 강한 인문정신만이 방책 


논설위원 이운묵 

 

 

요즘 사건사고가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 뉴스 보다가 살인사건~ 뭐 어쩌고하면 몸서리쳐지고 너무 끔찍한 생각에 재빨리 채널을 돌리거나 시선을 돌려버린다. 아내가 남편 청부살인교사, 인면수신의 비정한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 토막살인, 여중생 딸을 때려 죽게 한 두 얼굴의 야누스 목사,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고 불태운 사이코패스, 울산 계모 아동학대, 성희롱, 성범죄사건 등등 각종 기이한 패륜범죄와 잔혹 살인극이 넘쳐나고 마치 악마의 천국 같다.

 

악마는 재앙을 내리거나 나쁜 길로 유혹하는 마귀다. 마치 19세기 말 서유럽에서 나타난 악마주의(惡魔主義 Satanism)를 연상케 한다. 악마주의는 문학 또는 사상의 한 경향으로서 모든 통속적 도덕과 양식에 반항하는 의식이다. 매우 추악하고 퇴폐적이며, 기괴한 전율 또는 공포 따위에서 그 의식의 미와 정당성을 추구하려는 작품으로서 보들레르와 와일드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고 비평가인 보들레르(18211867)는 기이한 상상력과 예민한 탐미적(耽美的) 감각을 바탕으로 악마주의(惡魔主義) 경향의 시집()의 꽃을 출판하여 프랑스 상징시의 선구자로 제목부터가 침울하고 악마적이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아일랜드의 시인이면서 극작가인 19세기 말 유미파를 대표했다. 작품으로는 희극 <살로메>,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따위가 있다. 성경 속 헤로드 안티파트로스의 의붓딸인 살로메는 헤로드 왕 앞에 7개 베일의 춤을 춘 보상으로 그녀 어머니 헤로디아스의 기쁨을 위해서 은쟁반에 조카난(세례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도록 요청하는 희극이다. 이것 역시 살인을 전제로 한 악마적 스토리이다.

 

이처럼 작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 악마주의현상. 무엇 때문에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혼재된 결과이겠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가 가장 큰 근원적 원인일 것 같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신분상승과 욕망이 아니라 소박한 삶의 희망과 가능성마저도 불투명한 미래와 현실의 참담함이 주는 절대적 절망감 때문이란 생각이다. 충동, 분노 조절이 불가능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분노의 도가니 시한폭탄들이다. 평화가 사라진 중동, 극단주의자들에 테러, 빈발하는 강도 납치 강간사건 등이 모두 그런 악마주의적 현상이다.

 

본래 사람은 선한 자와 악한 자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럼 심리적으로 인간의 악마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인간에 대해 맹자(孟子)의 성선설과 순자(荀子)가 주장한 성악설이 다르지만 결국은 선한 인문정신을 추구하는 이론과 사상이다. 그런 심리적 양면성을 통제하고 다스릴 대안은 강한 도덕적 수양과 인문정신만이 대비책이다. 중용 제10장의 말씀이다. ‘故君子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 ‘군자는 속된 것에 휩쓸리지 않으니 이것이 강함을 바로잡아 세우는 것이요, 중용의 도리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강한 도덕적 인문정신, 즉 사람다움의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나약한 인간은 언제고 악마의 유혹에 휘말기 쉽다.

 

중용의 도리는 인간이 지켜야 할 천도와 인도이다. 천도는 하늘의 도리요, 인도는 사람의 도리이다. 이 도리가 모두 중용의 핵심적 인문정신의 사상이다. 따라서 군자는 그 어떤 악마성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강한 인문정신이 자신을 굳건히 지키고 사악한 악마들을 퇴치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이제 타인의 악마성만 꾸짖는 습성을 버리고 내안에 악마성은 없는지? 우리 함께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신용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