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묵의 문화칼럼] ‘워라밸’ 신드롬 제대로 이해하기 [이운묵의 문화칼럼] 신용산신문 주간 제807호 2018년 7월 12일(목)~7월 18일(수) ‘워라밸’ 신드롬 제대로 이해하기 요즘 ‘워라밸’ 신드롬이 대세이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이다.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일과.. 이운묵의 칼럼 2018.07.13
[이운묵의 울림들림 리뷰] 양팔 저울-함민복 양팔 저울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던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울림들림시 2017.09.03
[이운묵의 벌가벌가] 큰 인물을 작은 일에 쓰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➋ 큰 인물을 작은 일에 쓰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➋ 우도할계(牛刀割鷄) 우도할계(牛刀割鷄)는 본래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遊)가 노(魯)나라 무성(武城)이란 고을에 관리가 되어 무성을 다스릴 때이다. 스승 공자에게서 배운 대로 예악(禮樂)으로 백성.. 신용산신문 2017.03.18
[이운묵의 벌가벌가] 배움은 세상을 여는 지혜의 열쇠다-➋ 배움은 세상을 여는 지혜의 열쇠다-➋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 과거 부모세대엔 어쩔 수 없어서 학문연마에 때를 놓친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때를 놓쳤다면 늦었으면 늦은 대로 배움에 임하는 것이 차선책이고 최선이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좌우명에서 “나는 .. 신용산신문 2017.01.06
[이운묵의 벌가벌가] 시간은 오로지 앞만 보고 간다-➋ 시간은 오로지 앞만 보고 간다-➋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처럼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서양속담에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찾을 수가 없다.(Lost time is never found.)”, 또는 “시간과 바닷물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Time and tide tarry for no man.)”라고 했.. 신용산신문 2016.12.02
강으로 강을 건너자 강으로 강을 건너자 -혼돈의 시국에 대해 갖는 국민의 마음(중용 제10장의 말씀 차용) 100만 촛불이 불붙고 삼천리금수강산 방방곡곡에 1000만의 하야 함성이 메아리친다 정국은 소용돌이 치고 있어 바람과 구름은 갈 길을 잃고 있는 때에 여산이 스승에게 물었다. 强에 대해서 공자가라사.. 여산의 신작 2016.11.24
균형과 조화 광장-자유발언(2) 강으로 강을 건너자 -혼돈의 시국에 대해 갖는 국민의 마음 (중용 제10장의 말씀 차용) 100만 촛불이 불붙고 삼천리금수강산 방방곡곡에 1000만의 하야 함성이 메아리친다 정국은 소용돌이 치고 있어 바람과 구름은 갈 길을 잃고 있는 때에 여산이 스승에게 물었다. 强에 대해서 공자가라사.. 균형과 조화의 광장-자유발언 2016.11.24
[이운묵의 벌가벌가] 권력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➊ 법삼장(法三章) 권력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➊ 법삼장(法三章)은 중국 한나라 고조가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없애고 살인, 상해, 절도의 세 가지 죄만을 정한 법이다. 이것은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진(秦)나라를 멸망시킨 후 수도 함양에 입성했고 그 후 계속해서 함양.. 신용산신문 2016.10.25
세락중반생 世樂中飯生 세락중반생 世樂中飯生 세상의 즐거움은 밥맛과 살맛이 그 중심이다 바로 이런 것이 행복 ‘밥맛 살맛’으로 이해하는 고전 인문학 레시피 ‘중심(中心)의 이야기’ 중용(中庸)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 이 물은 왜, 무맛(無味)일까? 물은 자연만물의 생육에 근원이다. 그리고 밥은 우.. 여산에게 띄우는 편지 2016.10.15
[이운묵의 벌가벌가] 큰 인물은 늦게 이루어진다. 대기만성(大器晩成)-➊ 큰 인물은 늦게 이루어진다.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처럼 큰 인물이 되는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린 시간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고 이에 역행한다. 그것은 참을성 없는 조급함 때문이다. 중용 제2장의 말씀이다. ‘중니왈, 군.. 신용산신문 2016.09.05